행동파-면학파 분리현상 뚜렷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학원자율화」조치이후 처음맞는 한학기가 오는 15일 전후 일제히 실시되는 기말고사로 끝난다. 그동안의 캠퍼스는 학생시위로 일관된 느낌마저 없지않았다.
오늘의 대학가가 달라진 것은 무엇이며 그 실태는 어떤가.
사회부 취재기자들의 방담으로 자율화 조치이후 한학기를 결산해본다.
-제적생을 복학시키고 경찰력을 대학구내에서 빼낸 학교나 당국의 우려는 이번 학기를 지나면서 안도로 변하는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시위가 잦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규모나 열기는 예상보다 훨씬 덜했다는 것입니다.

<출석률 평균97%>
-그렇습니다. 시위참가학생이 학기초부터 시간을 지나면서 점점 줄기시작, 1천명을 넘는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5백명 이내였어요.
학교측은 학생들의 강의출석률이 평균97%이상이라고 자랑하더군요. 이만하면 이번 학기는 그런대로 잘 보냈다는 평가를 하는 것 같아요.
-문교당국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다행이란 평가를 하더군요. 지금 말한 출석률이 그렇고 경찰력이 빠져 나오면서 학내시위 주동학생과 옆에서 지켜보는 학생이 분리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경찰력으로 대표되는 공권력이 캠퍼스에서 빠지면서 학생들은『옛날에는 데모를 목숨걸고 하다시피 했으나 요즘은 긴장감도 적고 여유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동료들이 눈앞에서 경찰과 맞붙으면 편을 들지 않을 수 없었던 학생들이 요즘은 대부분 구경꾼으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업이 없으면 시위를 보거나 참가했다가 강의시간이면 교실로 돌아가는 여유가 생겼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두번 참가했던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에 흥미를 잃게 된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지난 4월19일 경찰과 교문을 사이에 두고 첫 투석전을 벌였던 연대의 경우 3천여명이 참가했었어요. 그런데 5월말쯤되니까 시위참가학생은 2백명을 밑돌게 되더군요.
일반학생의 호응이 점차 줄어들자 나중에는 오늘은 A대, 내일은 B대로 옮겨가며 몇몇대학 학생들이「연합전선」을 펴며 시위를 하기도 했지요.

<대학간 연합전선>
-학생들은 이같은 현상을 참신한 이슈나 새롭게 느껴지는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자체분석을 하더군요.
-학생들은 자율화조치가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는 표피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5월 들어서부터 「사회민주화운동」에 나선다는 선언을 하게됐죠. 학교나 당국이 진정한 학원의 자율화나 민주화를 위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것이 많은 학생들의 주장입니다.
-학칙하나 개정할수 없는 대학당국에 학원의 자율화나 민주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지요. 실제로 학교에 따라서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잘 알면서 그러느냐」는 식으로 책임을 대학바깥에 넘기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거든요.

<공개토론등 활발>
-어떻든 한학기 동안에 캠퍼스분위기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표정이 상당히 밝아진것 같지않습니까.
-그래요. 적어도 공개적으로 의사표시를 할수는 있으니까요.
지난해까지만해도 무슨 얘기를 하려면 주위의 눈치부터 살피던 학생들이 요즘엔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광경을 흔히 볼수있었읍니다.
-학내언론자유가 비교적 보장된 셈이군요. 교내 신문·방송의 경우도 학생들이 상당한 부분 편집권행사를 하고 있는것 같아요.
-학생들은 이를위해 그동안 제작거부등 몇번의 집단핵동을 했지요.
-그래서 학교측은 학생들이 교내신문을 시중의 일간지와 혼동하는 것 같다는 우려도 해왔지만 어떻든 학내의 시위나 학생들의 주장이 매회 톱기사로 취급돼왔읍니다.
-유인물과 관련해서 캠퍼스내 곳곳에「대자보」가 많았던것도 지적해야겠군요. 이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3월20일 서울대에서 였지요. 학생들은 6개 단과대건물벽을「자유의벽」으로 명명, 「지성과 양식을 수호하려고 자유의 벽을 만든다」고 했죠. 그날 밤 학교측은 「불온 벽보가 많다」는 이유로 이를 철거했지만 학교는 철거하고 학생은 다시 붙이는 시소를 계속하면서 학생들이 손으로 쓴 소견발표에서 풍자만화까지 다양한 내용이 게시되고 있읍니다,
-낮에 학생들이 붙여놓으면 밤에는 학교측이 떼어내는 숨바꼭질이 계속되자 학생들이 아예 하교할 때엔 떼냈다가 아침에 등교해서 다시 붙여놓는 광경마저 벌어지더군요.

<학교태도 소극적>
-이런식의 학내활동이 활성화되면서 학생들의 구호나 볍보내용도 점점 순화되는 것 같습니다. 「반파쇼 민주투쟁」등 격렬한 느낌을 주던 구호가 설득력을 띤「우리의 입장」「실태보고」등 다양한 내용으로 바뀌었지요.
-논문형태의 보고서가 많이 나온 것도 특징적인 현상인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군중심리로 학교기물을 부수는등 폭력을 행사한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대화의 자세는 보여줬읍니다. 이에 비하면 오히려 학교측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극적이었다는 평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집단적으로 학생들과 대화한다는것은 어려움도 없지 않았겠지만 학생대표와 총·학장이나 교수가 만나겠다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일부대학에서처럼 폭력불상사는 사전에 막을수 있지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읍니다.
-대학측은 학생들이 너무많은 것을 들고나와 감당하기 어렵다는 회피적인 태도를 보였읍니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학칙문제나 학생활동문제가 거의 전부였던 지난 4월까지는 적어도학교측이 소신껏 학생들과 얘기할 기회였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대에서는 지난4월12일 교수대표10명이 학생대표와 만나기로 해놓고 학생들이 시간에늦었다고 자리를피해 학생들로부터 비난을 샀고 3월23일 서울대 이현재총장이 학생앞에 나섰던 일에 대해 다른 대학에서는 총장이나서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느냐는등 폐쇄적인 반응을 보이더군요.

<언론에 공격화살>
-어쨌든 학원가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오해도 많이 받았읍니다. 언론이 전에없이 학생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한학기였다고나 할까요. 과거의 언론은 침묵을 지켰는데 반해 이번 학기 들면서 언론이 학생문제에 대해 적극보도를 한것을 두고 일부 학생들은 언론이 학생과 국민을 이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더군요.
-학생과 경찰간에 폭력논쟁도 무성했죠. 어떤 경찰서장은 교문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학생들의 투석으로 한 경찰간부가 부상당하자「살인적 작태」라고 투석하는 학생을 매도하더군요.
이에대해 학생들은「돌은 살인적 최루탄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방어수단」이라고 항변했읍니다.
-어떻든 대학주변의 주민들이「너희들 때문에 못살겠다」고 대학에 몰려가 항의하는 사태도 전에없던 현상이였읍니다. 최루탄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던진 돌에 피해를 보는 주민도적지 않았고 장사도 잘 안됐기 때문이죠.
-학기초엔 복학생들의 움직임이 가장 큰 변수가 되리라고 보았는데 사실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은것 같았읍니다.
-그렇습니다. 복학생이 행동에 나선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처음부터 복학생들은 정부의 복교허용조치를 지켜보며 오히려 조심했던 것 같습니다.
-외대에서 만난 한 복학생은『학교밖에서 몇년을 보내면서 곰곰 생각해 봤다』고 말하면서 『현재 학생들의 주장에 동감한다. 다만 앞장서지 않는 것은 방법론상의 문제다. 물리적인 데모는 학생쪽의 피해가 소득보다 너무 크다는것을 경험으로 터득했기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신입생들의 시위참가도 극히 적었던것 같습니다. 물론 첫학기이기 때문에 신중할수 밖에 없었겠지만-.
-어떻든 신입생들은 대학사회에 들어와 행동에 나서기전에 신중하게 심사숙고 해야한다는 태도가 역연했고 실제로 시위참가자에 1학년은 거의 없었읍니다.
-연대에서 만난 한 신입생은『아직도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다』며『처음 벽보나 유인물을 열심히 읽으면서 충격으로 받아들였으나 요즘은 비슷한 것이 계속 나와 관심이 줄었다』고 했읍니다. 그는『데모를 이해는 할것 같지만 아직 동참의사는 없다』면서『우선은 공부를 더 하고싶다. 선배들이나 교수로부터 더 많은 얘기를 듣고 사회를 알면서 정리해야겠다』고 했읍니다.
-2학기를 전망하면서 학교측은 이들 신입생의 행동변화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서울대 같은곳에서는 5월부터 1학년이 다수 시위에 참가하기 시작했거든요.
-학교측은 방학때 농촌봉사형태로 이들 신입생이 선배들과 어울려 의식화과정을 밟고 2학기에 전혀 다른 태도로 나오지 않겠느냐고 우려하는 일면도 없지않아요.

<신입생 동참꺼려>
-폐쇄적이었을때보다 자율화의 분위기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이번학기 신입생들을 흔히「자율화 1세대」라고 부르면서 시위주동학생들은 은근한 기대를 갖는것도 같습니다. 이들이 동참하지 않는 것은 공감을 안해서가 아니라 행동에 신중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더군요.
-사실 학생들의 이번 학기 움직임에 다수의 호응이 적었다고 학교나 당국이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가령 유인물을 유료배포하고 철야농성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면 금방 30만원내지 50만원의 성금이 모이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진정한 자율화를 위해 기성세대는 말끝마다 학생들이 자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학생들이 이번학기에 보여준 학내폭력등 과도기적 소란도 자제로 극복해야겠지만 기성세대가 그들의 요구나 주장을 수렴하려는 진지한 태도는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문교당국도 세부적인 사항까지 음성적으로 대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겠지만 대학당국도 적극적으로 자율영역을 넓혀나가야 하겠읍니다. 이에 앞서 학생들이주장하는 사회·정치적인 민주화요구도 진지하게 받아 들여질때 학생들은 학구에 전념하게 될 것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