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겅호」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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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사람들은 요즘 깊은 향수에 젖어 있다. 꼭 40년전 6월6일 노르망디상륙작전 시절의 비장과 위엄과 승리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미국의 시사잡지들은 벌써 몇주째 노르망디 특집을 내고 있다. 때마침 런던에서 열리는 서방 정상회담에 참석한 7개국 원수들도 노르망디를 방문할 계획이다. 역시 센티멘털 저니(감상여행)다.
그러나 이들의 향수는 달콤하고 애틋한 그런 것은 아닐 것 갈다.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참가한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들은 오늘 비록 서방국의 일원이지만 「연합국」시절의 열기도 우호도 없다.
우선 이들 지도자는 누구도 그 시절의 영웅들이 아니다. 미국도 그 시절의 위신과 위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 서방국들은 저마다 자신의 문제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초조하고 불안한 현실에 쫓기고 있다.
노르망디상륙작전은 단순히 어떤 전술, 전략의 성공만으로 평가될 일은 아니다. 역사의 진운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었다.
유럽의 전후 부흥을 가져온 「마셜 플랜」도, 대서양동맹도, 「미국의 세계 최강대국」지위도 모두 노르망디 승전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다른 한족엔 역설이 따르게 마련이다. 「히틀러」의 제3제국이 무너지면서 소련은 폴란드진출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오늘의 동구는 그 부산물이다.
동서 진영 사이의 불화와 긴장과 불신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전운은 세계 도처에서 감돌고있다.
지금이야말로 영웅 대망의 시대인 것 같다. 어깨에 별이 빛나는 영웅이 아니다. 도량과 창의와 신망의 영웅이 요청되는 시대다.
노르망디상륙작전에 통신 상병으로 참가했던, 지금 62세의 한 노병의 회고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번 주 뉴스위크지에서 그는「1백%의 아메리컨 겅호 (gung ho)정신」을 회상하고 있었다. 「겅호」는 한자 「공화」의 중국식 발음이다. 한 시절 미 해병의 구호이기도 했다.
노르망디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바로 『힘을 합쳐 나아가자』는「겅호정신」이었 다는 얘기다. 그때의 전우들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우애를 갖고 있었다는 회고도 했다.
이것은 미국 시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향수요, 동경인지도 모른다. 오늘 미국에서 애국심 붐이 일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오늘의 영웅은 모든 분야에서 묵묵히 그런「겅호정신」을 불태우고있는 사람들일 것 같다. 물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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