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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으로 치닫는 향락풍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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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향락·사치풍조가 우리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70년대 이후 생활형편이 조금 피면서 레저와 향락이 대중화되는가 했더니 어느 결에 사치와 퇴폐로 치달아 지탄의 대상이 되고있다.
일각에서는 그와 같은 사치향락의 풍조가 극히 일부 층의 경향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 버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미 이러한 풍조는「일반화」되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국민생활의 건전성을 좀먹어 가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유행하는 평일골프·한낮사우나·호화판 술집의 범람은 향락의 기풍이 극단으로 달리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내 돈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쾌락의 추구에 탐닉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 돈이나 빚이라도 얻어 쓰고 보자는 형상이다.
육감적 소비성향의 무서운 증대가 도덕적 판단력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서민대중의 감정이 평탄할 리 없다. 이런 글을 보고있노라면 절제의 미덕은 마비되고 수단이야 어떻든 물질적 욕구만 충족시키려는 이기적 사고와 행동이 앞서게 마련이다. 청소년의 탈선이나 강력 범죄가 급증하는 것도 이런 현상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보아야한다.
우리형편이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2천달러가 채 안되는 개발도상국이다. 갚아야 할 외채만도 4백억달러가 넘는다. 우리보다 인구가 절반밖에 안 되는 대만에 비교해도 경제의 내실이나 생활의 질에서 뒤지고있는 형편이다. 배고픈 것을 잊을만한 단계에서 벌써 허리띠를 풀고 백만장자의 흉내를 내려는 꼴이 돼서는 그나마 이룬「경제적 소성」도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현실은 딴판이다. 도시상류층의 과시적·낭비적 향락풍조에 곁들여 농촌의 부녀자들까지 곗돈을 모아 한해에 서너차례씩 관광버스를 전세내 전국을 누벼야 직성이 풀리게끔 됐다. 「놀자」「먹자」풍조가 전국민에 스미고있는 느낌이다.
쾌락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에 기초를 둔 지극히 자연스런 생리현상이긴 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1차원적인 관능의 향락을 마치 삶의 제일의적 가치인양 공공연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은 방향에서 크게 잘못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현상은 경제사회의 쇠퇴기나 국운이 쇠잔할 때 나타나는 말기증상이다.
사회전반이 관능적 향락에 도취할 때 그로 인해 소모되는 국민적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자원의 양은 막대하게 마련이고 상대적으로 경제건설이나 문화창조에 배분되는 에너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인의 경우에도 주색을 비롯한 인생의 온갖 쾌락을 마음껏 즐기고도 학문이나 예술 또는 사회적 성취를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쾌락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본능적인 까닭에 국민들의 열정을 자극하는 보다 매력적인 목표가 보이지 않는 한 쾌락에 끌리는 향락풍조를 막기가 어렵다.
민심이 수습되지 못하고 앞날이 밝게 내다보이지 않는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서는 순간만 즐겁게 보내자는 찰나적 가치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무엇인가를 향해 온갖 정성과 정열을 기울일 수 있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약속되는 사회풍토가 조성돼야한다. 비유컨대 인생의 목표를 높고 뚜렷하게 세운 개인이 순간의 향락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 것과 같다. 나라로서도 높은 이상과 확실한 방향이 제시돼야한다.
이와 함께 국민들이 건전하게 여가를 즐기고 심신을 풀 수 있는 시설의 확충도 필요하다. 휴일에도 가족들이 함께 하루를 즐길만한 장소가 없는 것이 전국의 현실이다. 해마다 시빗거리가 되는 관광·유원지의 무질서도 따지고 보면 기반시설의 부족에 기인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코가 막히면 입으로 숨을 쉬어야하듯이 건전한 행락의 길이 막히면 불건전한 향락으로 빗나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향락업소나 퇴폐행락에 대한 단속과 규제만으로는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건전한 행락의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불건전한 향락풍조를 내 몰아야한다.
금창태 <편집부국장겸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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