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영장 없는 도청 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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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영장 없이도 국제전화와 해외 e-메일을 도청할 수 있도록 허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5일 보도했다. 이 조치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은 당시 미 법무부에 근무했던 한국계 법학자 존 유 버클리대 교수가 제공했다고 신문을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인 2002년 테러범들에 대한 정보 획득을 명분으로 국가안보국(NSA)에 영장 없이 도청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령으로 부여했다. 이에 대해 NSA는 영장 없이 도청할 수 있는 대상은 국제전화와 국제 e-메일이었고, 미국 내 전화나 e-메일 도청은 법에 따라 법원의 영장을 받아서 했다고 주장했다. NYT는 "평소 500명 정도가 감시 대상이었으며, 시기에 따라 가감된 숫자를 감안하면 지난 3년간 영장 없이 도청당한 사람은 수천 명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공화.민주 양당 수뇌부는 부시가 문제의 대통령령에 서명한 뒤 딕 체니 부통령실로 초청돼 영장 없는 도청 허용 조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들 중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웨스트버지니아주 출신의 록펠러(민주당) 상원의원은 체니에게 우려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NYT는 "백악관에서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해 지난 1년간 추가 취재를 하며 보도를 미뤄왔다"며 "테러리스트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뺐다"고 밝혔다.

9.11 이후 미국 내에서 영장 없는 도청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왔다고 NYT가 폭로함으로써 정보기관의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NYT는 "부시가 NSA에 영장 없이도 도청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건 애국법에 따라 의회가 대통령에게 허용한 재량권을 넘어서는 불법적인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보도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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