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호소」에 집단시위 잦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대화」로는 안되고 집단시위나 난동 같은 극한 행동을 통해서만 문제가 부각되고 해결된다.
최근 우리사회 전반에 「민주」와 「법치」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이 같은 「대화무용」의 사고와 행동양식이 깊숙이 번지고 있다. 학생도, 택시운전사도, 철거민도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믿지 않고 평화로운 의사표시를 넘어 극단행동으로 치닫는 풍조에 휩쓸리고 있다. 당사자끼리의 문제인 노사분쟁이나 하찮은 동네주민들 사이의 문제, 행정조치까지도 당사자선에서 해결치 못하고 사회일반에 제기돼 제3자인 시민들에게 피해를 미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처럼 당사자끼리의 대화와 협상을 부질없이 보는 사고와 풍조는 우리사회가 이들 각 계층의 이해와 의사를 대변하고 옹호해줄 제도적 통로가 없거나 있어도 제구실을 못하는 가운데 「능률」만을 강조하는 고압적 행정의 필연적 결과로 지적된다,

<13시간 농성 후 해산|사납금 시비>
지난25일 대구시내 택시운전사 9백여명이 택시 2백50여대로 대구 시청 앞 등 중심 가에서 벌인 집단행동도 노사문제를 외부로 노출시켜 제3자에게까지 충격과 불편을 준 사례.
운전사들은 회사나 당국이 자신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자 차량 바리케이드를 치고 13시간동안 사납금 인하 등 9개항을 요구하며 농성했다.
일부 운전사들은 지나가는 차량의 유리창을 깨는 행패도 부렸다.
이 바람에 출근길의 대구도심 교통이 완전 마비됐고 시청업무가 하루동안 중단되다시피 했다.
이 소동이 일고 나서야 유경호 대구부시장은 『사납금 인하 등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는 언약을 해 운전사들은 하오3시10분쯤 해산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전해지자 대전 등 다른 도시의 택시운전사들도 집단행동으로 나설 기미를 보였다.

<2시간동안 가두농성|재개발 시비>
28일상오10시쯤 서울숭인동81일대 주민 2백여명은 『재개발사업에 주민도 참여해야한다』며 2시간동안 가두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일부주민들은 농성 중 경찰관에게 오물을 뿌리고 차도에 드러눕는 바람에 신설동∼동대문간의 차량소통이 한때 마비됐다.
이곳 2천5백여평에는 4백가구 2천여명의 영세민이 살고 있는데 최근 땅주인이 나타나 재개발사업을 시작하자 연고권을 주장하는 주민들과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90명이 버스로 상경|공금횡령 시비>
울산시 신정 협동조합원 90여명은 30일 상오7시40분쯤 버스 편으로 상경, 재무부 앞에서 조합간부의 공금횡령과 조합의 부도로 임은 피해를 정부가 보상하라며 농성했다.
이 소동도 그 동안 수차에 걸친 보상요구를 외면해 오던 신용협동조합연합회 측이 집단행동에 밀려 피해를 보상해주기로 약속하자 해산했다.

<서울시장 면담요구|건물보상 시비>
올림픽경기장 신축 예정지인 서울이동180 몽촌 부락 주민1백여명은 지난달 21일하오9시쯤 무허건물 보상대책을 요구하며 강동구청 정비계장 임재남씨(37), 동장 유덕준씨(49) 등 2명을 노인정에 4시간동안 연금 해 놓고 농성했다.
또 지난달 24일에는 2백50여명이 올림픽경기장 기공식에서 시위를 벌이려다 실패하자 20여명이 올림픽조직위원장과 서울시장의 승용차를 가로막고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신학대학생들도 합세|여관신축 반대>
30일 상오11시쯤 서울봉천4동 867일대 2백여 가구 주민과 인근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대학생 3백여명은 지난달 26일 신축허가가 난 허모씨(54)의 여관건축을 반대, 「여관신축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농성했다.
주민들은 봉천4동 일대엔 현재 고급여관 50여개가 밀집, 주택가로 통하는 골목마다 여관이 들어서 있어 2백50여m를 돌아 출입해 왔으나 허씨의 여관이 들어서면 유일한 출입구가 막힌다고 주장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