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개위 "표준약관 사전신고 철회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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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불공정 약관 규제를 강화하려던 공정거래위원회 방침에 제동이 걸렸다.

공정위는 사전 심사 없이 사업자들끼리 표준 약관을 만들어 사용하면 담합의 우려가 있다며 사전 신고제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가 중복 규제의 우려가 있다고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27일 "규개위 경제1분과가 공정위가 제출한 약관법 개정에 관한 규제 심사안 일부에 대해 철회 권고를 내렸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당초 안은 표준약관을 사용하기 전에 신고하지 않으면 5백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규정했다. 사업자의 필요에 따라 공정위에 심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돼있던 것을 의무적으로 사전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규개위는 공정위가 표준약관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불공정 약관에 대해선 직권 조사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신고제 도입은 지나친 규제라고 결론지었다.

사업자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표준약관과 다른 개별약관을 사용할 경우엔 표준약관과의 차이점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하는 방안 등은 규개위 심의를 통과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표준약관'이라고 하면 일반 소비자들이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거래를 하기 때문에 신고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송상민 약관제도과장은 "사업자 단체가 표준약관을 만들 때 대부분 법률 자문을 하게 된다"며 "사전 신고제가 운영되면 기업들에도 법률 자문 비용을 줄이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일단 규개위 의견을 존중해 개정안을 재검토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에도 소비자단체 등이 주도하는 약관분쟁조정협의회를 만들려다 정부 고유 업무를 민간에 위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관계부처 반발에 부딪쳐 백지화한 적이 있다.

공정위 宋과장은 "사전 신고제를 도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업자 단체만 제정할 수 있는 표준약관을 소비자단체도 제정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통해 불공정 약관을 규제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표준약관=학원.택배.전자 금융 등 각 거래 부문에서 사업자와 소비자 또는 사업자 간 계약에서 사용하는 개별약관의 준거(準據)가 되는 약관. 표준 약관을 이용하면 소비자는 불공정 조항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고, 사업자는 개별적으로 약관을 만드는 수고를 덜고 분쟁 소지를 줄일 수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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