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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쾌락에 중독되도 누군가와 안정된 결합을 갈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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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22면

일러스트 김옥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존재한다. 내가 소녀였던 시절, 남자들은 소피 마르소와 피비 케이츠 같은 여자에게 열광했다. 그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남자는 대부분 ‘맥가이버’로 대표되는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키 큰 남자였는데,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영화 때문에 나는 관능의 세계에 처음 진입하게 되었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섹시함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최초의 남자는 영화 ‘나인 하프 위크’의 미키 루크였다고 말이다.

백영옥의 심야극장 <1> 나인 하프 위크

자기 여자에게 우아한 시계를 선물하면서 나른한 얼굴로 “엘리자베스, 12시마다 이 시계를 보면서 당신을 애무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줄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기이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여자는 없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적어도 ‘벗었을 때’와 ‘입었을 때’에 생기는 간극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상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인 하프 위크’는 제목처럼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벌어진 9주일 반 동안의 일을 그린다. 미술계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여자와 정체불명의 부유하고 매력적인 남자가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마주치는 순간, 서로에게 깊은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남자는 곧 자신의 성적 취향을 드러낸다. 놀라운 건 두려움 속에서도 여자가 자발적으로 수갑에 묶인다는 것이다. 그가 요구하는 대로 바닥을 기고, 타인의 물건을 훔치며, 남자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는다. 그녀는 뉴욕의 첼시 호텔에서 그가 다른 여자와 섹스하는 장면을 (동의하에!) 지극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기도 한다.

무엇이 여성을 자발적 노예로 만드는가
엘리자베스 맥닐의 원작소설 『나인 하프 위크』를 ‘다시’ 읽은 건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고생 끝에 병 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누군가를 때리거나, 누군가에게 맞아서 생기는 쾌감인 사도마조히즘의 세계에 관심이 있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들의 포르노’라는 애칭을 달고 전 세계적인 ‘현상’처럼 밀어닥친 그레이 열풍 때문에 나는 옛 기억을 더듬어 『나인 하프 위크』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소설을 읽다가 몇 개의 문장에 줄을 그어 놓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가 내게 해준 일들 먹여준다. 모든 먹을거리 장보기와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그는 아침에 옷을 입혀주고 밤에는 옷을 벗겨주었다. 내 세탁물을 그의 것과 함께 세탁소에 가져갔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내 구두를 벗겨주다가 뒤축을 갈아야 한다며 다음날 구두 수선소에 가져갔다. 그는 끝없이 읽어주었다. 신문, 잡지, 살인사건 추리소설,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소설들, 집에서 작업하려고 가져온 내 서류 파일들까지. 사흘에 한 번씩 내 머리를 감겨주었다 어느 날 그는 눈이 돌아가게 비싼 ‘켄트 오브 런던’ 머리 브러시를 사왔고, 그날 저녁 그 빗으로 날 때렸다. 멍이 다른 것보다 훨씬 오래갔다. 매일 밤 그 브러시로 내 머리를 빗질했다…우리 자기, 내일은 긴 팔 옷을 입어야겠네. 더울 거라는데 곤란하게 됐네요.”

그러나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인 말은 그토록 많은 것을 해준 ‘그’에 비해 엘리자베스가 스스로를 묘사한 이 문장이다. “내가 한 일.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에 빠졌다는 건 자율성을 잃는다는 말과 같다. ‘자아의 실현’을 최우선 목표로 가르친 21세기에 자율성을 잃는다는 건 심각한 문제를 노출한다. 사실 ‘사도마조히즘’이 내게 가장 큰 의문으로 다가온 것도 이 ‘자발적 노예’ 역할에 어째서 여자들이 빠져들고 열광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불평등한 관계가 주는 매혹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다가 요즘 시대에는 ‘불안함’이 사랑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걸 깨달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만남이 일종의 끊임없는 비교우위에 의한 경쟁체제라는 사실과 연관된다. 여자는 미용업계의 사례를 받으며 몸매와 나이로, 남성은 직업과 재산 상태로 끝없이 경쟁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끝도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자유가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감정 결합에 대한 기대로 불평등 수용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에 의하면 여자들이 불평등을 편안하게 여기는 건 그것이 ‘권력관계’를 ‘보호관계’로 바꿔주고, 자연스러운 상호의존성과 밀착된 감정 상태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대 사회의 사랑이 추구하는 평등의식에서 상당한 양의 피로감을 발견하는데 가령 침대 위에서의 평등이란 끝없는 협상과 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말은 언뜻 가부장, 혹은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페미니즘의 반작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여성이 남자에게 지배당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감정적인 결합을 갈망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나인 하프 위크’의 엘리자베스가 그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제아무리 쾌락에 중독된 몸이라고 해도 누군가와 안정적으로 결합하고 싶다는 마음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에 파국을 부른 뉴욕의 첼시호텔은 영국의 펑크 록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멤버인 시드와 애인 낸시가 투숙했던 곳으로, 낸시는 그곳에서 피범벅인 상태로 의문사했다. 에로티즘과 죽음의 연관 관계를 밝혀내고자 했던 조르주 바타유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쩐지 가슴이 서늘해지는 우연이다.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시드 비셔스가 했던 이 말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타투 문구라는 걸 알게 된 건 몇 년 전이었다. 약물 중독과 몇 번의 성형수술 실패 후, 고목나무처럼 망가지고 늙어버린 ‘미키 루크’가 애인의 품에 안겨 우는 얼굴을 본 건 일주일 전이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던 남자의 한때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의 망가진 얼굴 속에서 깊은 슬픔을 느낄 것이다. 릴케의 말처럼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철저히 멸시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 『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 ,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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