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시장의 언론자유 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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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 제37차 총회가 최근 파리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 참석했던 세계각국의 신문발행인과 신문종사자 4백여명은 「자크·시라크」 파리시장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언론자유에 관한 견해를 들을 기회를 가졌다.
같은 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잇달아 행해진 이 두 프랑스 지도자의 연설은 모두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보였으나 「자유」의 내용에서 견해를 달리해 회의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의 연설내용은 대충 이랬다.
▲「자크·시라크」 시장(파리 시청에서)=세계적 경제위기는 정보·통신수단의 자유화나 해방을 촉진하기보다는 언론에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도록 최촉했다.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제안한 새 언론법안이 현재 의회에 심의 중에 있다. 나는 언제나 언론에 관한 최선의 법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말로 요약된다고 믿고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를 지지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언론은 자유로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를 위촉시킬 가능성이 있는 법은 모두 반대해야 한다. 언론자유는 하나이며 불가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건적인 것일 수도 없고 차별적인 것이어서도 안 된다.
언론자유의 신장이 저해되고 언론활동이 억압받는, 그리고 언론의 존엄성이 부인되는 곳에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법은 자유의 수호자여야지 간수여서는 안 된다」(「빅토르·위고」).
▲「미테랑」 대통령(소르본대 대강당에서)=언론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세계의 어느 나라고 이 자유에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여러 곳에서 여전히 여론형성의 주요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언론을 권력과 금력의 선전도구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괄목할 발전은 그것이 공익에 봉사토록 이끌어질 때 우리의 큰 희망이 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 이는 경계해야할 새로운 권력일수밖에 없다. 시청각 미디어의 기술혁명이 다른 미디어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여론의 반영과 이를 위한 토론의 장소다. 정보·통신의 세계적인 균형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현재 미디어의 균형을 위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신문선택의 평범한 자유가 주어져야하며 이를 위해 언론의 독과점은 제한돼야한다.
세계의 정보는 20여 개의 회사들에 의해 독점 지배되고 있다. 세계정보의 새로운 질서정립을 위한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오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두 사람의 언론관은 언론자유가 민주주의의 선결요건이란 점에서 일견 동일선상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자가 언론자유의 무조건·무차별적 보장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독자의 정보선택(신문선택)의 자유보장이란 측면에서 부분적 제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두 지도자의 이러한 입장은 현재 하원을 통과, 상원이 심의중인 사회당 정부의 새 언론법안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미 드러난 좌·우파의 견해차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당 정부의 새 언론법안은 △특정개인이나 그룹은 주1회 이상 발행되는 전국 종합지(일간 및 주간)를 동시에 3개 이상 소유할 수 없고 △특히 전국 일간지는 1개만을 허용하며 △일간신문의 경우 전국지와 지방지의 동시소유를 금지한다는 게 그 내용이다.
이 법안을 둘러싼 논쟁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대상은 에르상 그룹이다. 르 피가로 등 전국 일간지 3개, 파리-노르망디 등 지방지 16개, 주간지 2개, 격주간지 및 전문지 19개 등을 갖고 있는 이 그룹은 야당세력의 대변인이나 같은 대표적 보수우파 언론재벌이다. 언론의 독과점 규제를 목표로 한 이 법안이 언론왕국 에르상 그룹에 더 나아가 우파인 야당세력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파는 이 법안이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야당 탄압용이라고 강력히 반대하고 있고 집권세력인 좌파는 정보선택의 자유보장을 통한 언론자유의 신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FIEJ총회 참석자들 앞에서 연설했던 전·후자가 각각 우파와 좌파의 지도자였다는 점, 시기적으로 새 언론법안이 프랑스 정가의 쟁점이 되고있던 시점이란 점을 생각할 때 두 사람의 견해와 입장이 같을 수 없었음은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일일게 분명하다.
다만 같은 언론자유를 놓고 정치적 입장이나 기타 여건에 따라 그 해석이 이렇듯 첨예하게 다를 수 있다는게 흥미로울 뿐이다. 언론자유의 왕도는 없는 것인가.<주원상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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