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세대 핵무기 개발 본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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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차세대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14일 보도했다. 지난달 미 의회는 차세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예산 2500만 달러(약 250억원)를 승인했다. 당초 정부가 신청한 940만 달러의 세 배 가까운 액수다.

그동안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희망해 왔으나 의회는 관련 예산 승인을 미뤄 왔다. 이번에 예산이 승인됨에 따라 앞으로 미국이 보유 중인 핵무기의 상당 부분을 교체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미 로스 앨러모스, 로렌스 리버모어 등 국립연구소는 신형 핵무기 디자인 개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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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무기 현대화 야심=차세대 핵무기안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이 쉽고 유지비가 싸며 보관이 안전한 핵무기를 만든다는 '핵무기 현대화'가 주된 목표라고 WSJ는 전했다. 미국은 냉전이 종식된 1980년대 말 이후 핵무기를 새로 생산한 적이 없다. 92년 이후 핵실험을 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는 대부분 최소 15년에서 최장 30년 된 것이다. 노후한 핵무기의 현대화는 '파괴력을 증강하면서 보관은 쉽게 하기 위해 탄두의 무게와 부피를 최대한 줄이는 작업'이다. 동시에 테러리스트들이 탈취했을 경우 쉽게 폭발시키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고강도 지하목표물 파괴용 핵무기인 '벙커버스터' 개발안을 두 차례나 의회에 상정하는 등 신형 핵무기 개발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벙커버스터는 지하에 감춰진 대량살상무기(WMD)를 공격하기 위해 땅속 깊숙이 파고들어가도록 만들어진 전술 핵무기다. 부시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두 차례나 개발안 승인을 받지 못하자 대신 오래된 핵무기를 현대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부시 행정부는 2007년부터 10년간 20억 달러를 투입해 소형 수소폭탄 탄두인 W-76의 수명을 30년 이상 늘리고, 파괴력 강화를 위해 설계상 결점을 보충하는 조사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냉전시대에 개발된 W-76은 현재 미국이 갖고 있는 핵탄두(5000여 개)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 비판 여론=WSJ는 미국의 이 같은 핵전력 강화 움직임이 이중적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극력 반대하면서 자국의 핵전력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다른 나라 보고 핵무기 개발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의 무기는 현대화하겠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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