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기자의맛따라기] 대구탕·육개장·따로국밥은 사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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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추위가 맵다. 게다가 하루가 멀게 꼬리를 문 송년 술자리. 이런 땐 속까지 후끈하고 땀이 흠씬 나도록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홍승면(1927~1983) 선생도 생각난다. 그는 훌륭한 언론인이면서 우리나라 미식(美食)칼럼의 개척자이자 대가이기도 했다. 맛 이야기가 넘치는 시대지만 1976~83년 그가 쓴 '백미백상(百味百想)'보다 뛰어난 글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연재한 글이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83년) 군침으로 책장을 적시며 탐독하던 기억이 새롭다. 긴 객지 생활로 미각이 상한 시골 유학생인 데다 끼니가 늘 온전한 것만도 아니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한꺼번에 읽기 아까워 하루 읽을 편 수를 정해 두고 애지중지했었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육개장과 비슷했던 대구탕(大邱湯)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육개장에 자리를 양보하고 은퇴한 것인가. 지금 서울 거리에 '대구식 따로국'이 퍼지고 있다." 대구탕이 궁금했었다.

대구탕=생선 대구가 아닌 쇠고기로 끓인 대구탕(6000원)을 책에서 읽은 지 15년쯤 뒤에 발견했다. 을지로의 유명한 갈비집 '조선옥'에 있었다. 반가워 물으니 "대구식으로 끓인 탕"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깍두기 크기로 자른 쇠고기와 엄지만하게 토막 친 대파를 듬뿍 넣고 토란대, 배추우거지도 섞어 채소가 푹 무르도록 끓인 매운 국이다. 끈적일 듯 진한 국물 맛은 묵직하면서 파가 많이 들어가 달금한데 뒷맛은 칼칼하다. 육개장이나 따로국밥과는 분명 달랐다.

대구탕이 서울 음식점에 등장하기는 30년대 초 문을 연 공평동 '대연관'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음식은 지금의 육개장과 비슷했고 파를 아주 많이 넣었다고 한다(한복진 교수).

육개장=조선옥 골목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안성집(1957년 개업)'이 있다. 갈비집이지만 육개장(5000원)도 유명하다. 여주인은 조선옥 초기 멤버로 10여 년 근무하다 독립해 안성집을 열었다. 빨갛고 탁한 국물에 고기와 파만 보이는 육개장은 일반적 육개장에 비해 투박하고 꾸밈이 없다. 하지만 맛은 진하고 깊다. 고춧가루를 사골 우릴 때부터 넣고 오래 끓여 맛 내는 요소들이 깊게 어우러진 국물은 얼큰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조선옥 대구탕이 요즘의 육개장으로 탈바꿈하는 과도기 맛이라 할 만하다.

수유리 '샘터마루' 육개장(4000원)은 건지가 푸짐하다. 양지.사태.곱창에 대파.양파.고사리.당면을 넣고 계란을 풀었다. 육개장 특유의 기름은 많지 않다. 첫술에는 맛이 가볍고 싱거운 듯하다. 그러나 맑은 국물은 먹을수록 부드럽고 시원하며 먹고 나면 칼칼하다. 30년 한결같이 북한산 등산객의 사랑을 뺏기지 않는 내공이 느껴지는 맛이다.

따로국밥=오늘날 대구의 대표 향토 음식은 누가 봐도 따로국밥이지만 최남선의'조선상식문답'을 보면 육개장이라고 돼 있다. 이로 보면 대구탕-육개장-따로국밥은 뿌리가 같은 음식일 수도 있겠다. 한 가지 메뉴로 24시간 영업하는 '강남따로국밥'의 따로국밥(6000원.사진)은 대구식을 서울 사람 입맛에 맞게 재구성한 선지 콩나물해장국이다. 선지는 부드럽다. 뻘겋고 맑은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면서 맵싸하다. 대구식보다 기름이 적어 맛은 가볍고 깔끔하다.

이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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