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 심한 서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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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은 사회복지와 싼 물가, 그리고 국민들의 근검정신이 유별나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 실업·근로시간·외국인취업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 서독인들은 아직도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서독에서는 17만㎞의 국도와 7천5백㎞의 고속도로 통행은 물론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학비, 각종박물관관람료·공원입장료 등은 전부 무료고 한달에 30마르크(9천원)만 내면 택시를 제외한 모든 교통수단을 하루에 수십번을 이용할 수 있다.
또 세계1급 승용차에 기름값은 한국의 절반정도에 지나지 않고 각종 농·축산물가격도 매우 싸 생계비고민에서 벗어나고 있다.
80년 서독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2천l5마르크(약60만원)로 한국의 22만원에 비하면 무려 3배나 높지만 실생활비는 한국의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
서독국민의 가계지출내용울 보면 교통비가 전체의 1.3%, 교육비 2%, 식비 24%이며 전체의 3분의2는 집안 꾸미기·옷치장·관광 또는 행락 등 문화비로 돌려쓸 수 있다.
실제로 서독인구 6천2백만명 가운데 3천만명이 매년 1회 이상 휴가여행을 즐기고 있으며 그중 절반이 넘는 1천6백만명은 해외여행을 한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그리스·유고 등에서는 서독관광객이 없으면 모든 관광지가 파리를 날리게 될 정도다.
그러나 서독인들의 일상생활은 납득되지 않을 정도로 근검절약이 자리를 잡아 이른바 「낭비 제로」의 사회를 보여준다.
1주일에 한번, 그것도 시간을 정해하는 목욕, 필요에 따라 불이 켜지고 정확히 1분만에 다시 꺼지는 건물 복도의 조명시설, 물건을 아무리 많이 사도 담아갈 비닐봉지 한장 거저 주지 않는 슈퍼마키트, 웬만한 수리는 스스로 하는 차량관리, 종이와 담배를 따로 사서 말아 피우는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목욕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도 1주1회를 원칙으로 강제하다시피하는 하숙집 주인의 정확하고 확고한 방침은 조금도 어긋나는 법이 없다.
서독정부와 노조의 실업자 구체방안도 더욱 적극성을 띠고 있다. 현재 주 5일 40시간의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고 나머지 부족인력은 실업자로 보충하며 정년도 2∼3년을 줄여 젊은 인력의 사회진출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실업자구제책의 골자다.
즉 하루 7시간씩 주5일 근무제로 하면 근로자도 더욱 여유가 생기고 실업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된다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다.
따라서 실업문제·외국인취업문제 등이 신문 전면을 차지하는 것은 실제 문제의 심각성보다 EC출자·제3세계원조·외국근로자수감소를 노린 「엄살」이라는 것이 주변국이나 이방인들의 비판이다. <뮌헨=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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