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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반값 SUV … 차이나 '자동차 독립'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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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람객들이 상하이 모터쇼 1층 전시장에 개설 ‘창청기차(미국명 그레이트 월 모터스)’ 부스에서 소형부터 중·대형까지 SUV 전략 차종들을 살펴보고 있다. [블룸버그]
20일 창청기차 부스에 들른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이 동행한 임직원들과 함께 1500cc 급 SUV 차량 ‘하발 H2’ 앞에 서 있다. [김영민 기자]

“이거 가격이 얼마 정도 하는가, 김 이사?” “11만 위안(약 1971만원) 정도입니다.”

 “2000cc 모델인데 어떻게 가격이 그렇게 나오나? ‘스포티지’보다 1000만원 더 싼 거 아냐.”

 지난 21일 상하이(上海) 모터쇼 현장을 찾은 이형근(63) 기아자동차 부회장과 현지 임원이 중국 로컬 메이커 ‘창청(長城)기차’ 전시관에서 나눈 얘기다. 이날 이 부회장을 비롯한 현대·기아차 임원들은 약 30분 간 창청기차 부스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포드·닛산 등에선 주로 자동차 외관을 둘러보거나 설명만 듣던 이 부회장은 창청기차가 만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H6 쿠페’·‘H2’에는 직접 올라타 운전대를 잡고, 실내 내장재를 살펴보기까지 했다.

 폴크스바겐·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점령했던 중국 완성차 시장에서 토종 업체들이 ‘실지(失地) 회복’을 노리고 있다. 1978년 덩샤오핑(登小平)의 ‘개혁개방’ 조치 이후 중국 토종 업체들은 “외산 메이커와 50대 50 합작을 의무화한다”는 현지 법령 탓에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메이커에 의존하는 경영 전략을 짜왔다. 지금도 중국 시장에서 연간 100만대 이상을 판매하는 메이커는 폴크스바겐(351만3887만대), GM(170만7969대), 현대차(112만48대), 단 세 곳 밖에 지나지 않는다. 30년 넘게 외산 메이커들에게 시장을 빼앗긴 토종 업체들이 이제는 ‘홀로 서기’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중국 로컬 메이커들이 꺼내든 무기는 SUV다. 차체가 크고, 비포장도로에서도 비교적 무리없이 달릴 수 있어 중국 소비자들의 자동차 선호도가 최근 세단에서 SUV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3년 간(2012~2014년) 평균 534%씩 성장한 소형 SUV 시장이 이들의 주요 타깃이다.

지난달 중국 업체 6곳 33% 성장 일등공신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모임 ‘승용차연석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1만15대 정도에 그쳤던 중국 소형 SUV 시장은 지난해 40만3022대 규모까지 늘었다. 불과 3년만에 약 40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같은 기간 중국 SUV 시장 규모가 약 115만대 늘어난 228만대 수준까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소형 SUV가 전체 SUV 시장 성장세를 이끈 셈이다. SUV 덕분에 지난달 창안·창청기차 등 중국 완성차업체 6곳의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3% 늘어난 29만3000대로 집계됐다.

 중국 토종 업체들이 내놓는 중·소형 SUV의 최대 장점은 누가 뭐래도 가격 경쟁력이다. 이들 중·소형 SUV는 10만 위안(약 1744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비슷한 체급(1600~1700cc)의 차종인 현대차 ‘투싼’, 기아차 ‘스포티지’가 16만 위안(약 2780만원) 정도에 팔리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전략이 통한 덕분에 지난달 중국 시장에서 SUV 판매 상위 10개 차종 가운데 든 8개가 토종 업체 모델이다. 합작사의 모델은 2개뿐이고, 항상 1~2위를 다투던 폴크스바겐 티구안의 순위는 5위까지 밀렸다.

 실제로 이번 상하이 모터쇼에 참가한 베이징(BAIC)기차, 상하이(SAIC)기차, FAW(중국제일기차), 창청(Great wall)기차 등 토종 업체들은 1000㎡(약 300평) 넘는 전시관에 주로 SUV 차량을 전시했다. 이들 메이커가 모두 전시장 1층(1~4전시관)에 모여 있어 중국산 SUV는 더욱 눈에 띄었다. 특히 중국 메이커 창안(CHANGAN)은 SUV 모델 ‘CS75’·‘CS35’, BYD는 중국 왕조 이름를 딴 ‘당’·‘송’·‘원’ 등 SUV 차량으로 관심을 끌었다. 합작사 톱 메이커인 상하이차는 쌍용차 티볼리 크기의 ‘MG3’ 등을 내놨다.

 SUV 시장이 커지면서 중국 토종 업체들의 판매량도 예전에 비해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선 창안(長安)기차와 창청기차의 기세가 무섭다. 로컬 1위 업체인 창안기차는 지난해 연간 51만대를 판매하면서 전년 대비 35% 판매량이 늘었다. 시장 점유율 순위도 2013년 11위에서 지난해 5위로 6계단 올라섰다. 올 1분기 기준으로는 시장 점유율 4.8%를 기록하면서 현대차(4위·6.1%) 바로 턱밑까지 추격한 셈이다. 피터 슈라이어(62) 현대차그룹 사장(디자인 총괄)도 창안기차 부스에 들러서는 자동차 모델 별로 창틀 마감, 라디에이터 그릴 등을 직접 두들겨가며 체크했다.

베이징현대 관계자는 “올 1분기 중국 완성차 시장에서 창안기차 등 토종 업체들은 전년보다 20% 이상 성장한 반면 해외 브랜드 합작사들은 2% 성장에 그쳤다”면서 “중국 경기의 둔화 추세까지 맞물리면서 싼 가격으로 승부하는 로컬 메이커들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자동차도 작년 7만 대나 팔아

 ‘그레이트 월(Great Wall)’로도 불리는 창청기차도 최근 현지 시장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창청기차가 생산하는 SUV ‘하발 H2’는 가격이 9만8000 위안으로 19만 위안 수준인 혼다 ‘CR-V’의 51% 수준이다. 기아차 이형근 부회장도 “중국산 ‘반값 SUV’가 외산 메이커 승용차의 파이를 잡아먹고 있다”면서 “로컬 SUV와 합작사가 만든 승용차의 가격이 같으니 소비자는 더 큰 SUV를 사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밖에도 중국 메이커들은 대형 세단에서도 기술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창안기차가 지난 20일 상하이 모터쇼에서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로 선보인 대형 세단 콘셉트카 ‘래톤 CC’는 프리미엄 세단 ‘재규어’를 닮은 차량 앞면과 고급스러운 광택이 돋보였다. 한 외국계 자동차 업체 임원은 “중국 업체들이 실제로 이렇게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세단을 내놓는다면 현대차 ‘쏘나타’, ‘그랜저’도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면서 “30년 간의 기술 제휴를 통해 중국 업체들도 글로벌 트렌드는 흉내낼수 있는 수준까지는 진화한듯 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토종 업체들의 부스에서는 육중한 차체를 자랑하는 영국산 SUV 브랜드 ‘랜드로버’를 베낀 차량, BMW의 소형 세단 ‘미니’를 본뜬 모델도 종종 눈에 보였다. 하지만 디자인만 따져보면 헤드램프와 앞 범퍼, 라디에이터 그릴로 이어지는 차량 전면부가 예전에 비해 훨씬 세련돼졌다. 차량 전면부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차량 구매를 실질적으로 유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기자동차(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차 등 친환경 자동차 분야에서는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두려울 정도다. 지난 한해 중국 시장에서 친환경차 판매량은 7만대에 달했다. 전년(1만9000대) 대비 5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우리나라의 친환경차 시장이 2013년 715대, 지난해 1183대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 규모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도요타·폴크스바겐·GM 등 글로벌 톱 메이커들을 대상으로 중국 대륙에서 개발한 친환경차에만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폴크스바겐은 102억 유로(약 13조6285억원)를 투자해 지난 2월 베이징(北京)에 친환경차 R&D 센터를 개설했다. 다임러 역시 지난해 11월 베이징에 메르세데스-벤츠 R&D 센터를 개관해 친환경차 관련 핵심 연구개발단지로 활용하고 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순식간에 전기차 관련 기술을 선진 업체로부터 흡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면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친환경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르는 동안 우리나라는 미래형 자동차 트렌드를 아예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중국)=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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