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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강조한 '핵연료 재처리’ 권한은 못 얻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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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협력대사(오른쪽)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2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에 가서명했다. 1973년 후 42년 만에 마련된 새 협정에서는 한국이 미국산 우라늄을 저농축 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명시됐다. [김상선 기자]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길을 실낱같이 열어뒀다. 하지만 빗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한·미 양국은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를 앞으로 ‘합의할’ 사항으로 남겨놨다. 그래서 미국의 동의가 없을 경우 농축과 재처리는 불가능하다. 다만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은 협정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농축과 재처리는 정부가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에 임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13년 1월 미 하원의원단을 만나 “새 정부의 현안들 중 하나가 한·미 원자력 협정”이라며 “핵폐기물 처리가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라고 했다.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달라는 의미였다. 농축은 전량 수입하고 있는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고 재처리는 쌓여가는 핵폐기물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에선 일본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은 1988년 맺은 미·일 원자력 협정에 따라 포괄적 동의를 얻어 20% 미만 저농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핵 비확산 정책이 최우선 고려 사항인 미국은 끝내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신성호 교수는 “한국에 재처리와 농축을 허용해주면 다른 국가에도 이를 허용해줘야 하고 결국 핵 확산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이번 원자력 협정에선 양국 합의하에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선에서 농축 문제를 절충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고농축과 저농축의 기준을 20%로 잡고 있다. 그런 만큼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앞으로 설치될 한·미 고위급 위원회에서 합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여전히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다.

영국, 프랑스 등 제3국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내 재처리하는 방법은 허용됐다. 원전부지 내 수조에 쌓여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간접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마련된 셈이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연구개발 분야에선 다소 빗장이 열렸다. 원자력 발전을 하고 남은 핵연료를 이용한 조사후시험(照射後試驗)의 경우 정해진 시설에서 자율적인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연구를 할 때마다 건건이 승인을 받거나 1~5년 단위로 동의를 구해야 했다.

 사용후 핵연료를 이용하는 파이로프로세싱에서는 전해환원(電解還元) 기술 개발을 허용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이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재처리(reprocessing)는 사용한 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뽑아내 다시 원전 연료로 쓰는 기술이다. 하지만 발전용 우라늄과 달리 플루토늄은 핵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은 이 때문에 핵 후발국들이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막아왔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재처리와 달리 순수한 플루토늄을 뽑아내지 않는다. 미국이 전해환원까지만 기술 개발을 허용한 건 이런 점이 반영됐다. 전해환원은 전체 공정(전처리-전해환원-전해정련-전해제련-폐기물 처리)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한다.

글=김한별·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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