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양과 남성에 맞선 예술가 '오노 요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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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아니면 오노 요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팝그룹 비틀스의 리더였던 존 레넌(1940~80)은 돈과 명예의 비틀스를 버리고 오노 요코(小野洋子.1933~)를 아내로 맞았다.

68혁명으로 자유와 평등의 바람이 유럽을 휩쓸던 1960년대 말이었다. 20세기 최고의 러브 스토리는 한 여자를 만인의 적으로 만들었다. 세계의 연인으로 빛나던 존 레넌이 일곱 살이나 연상이고 괴상한 미술 작업을 하는 일본 여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 세상 사람들은 화를 내고 손가락질을 했다.

"나에 대한 반감은 적어도 세 종류입니다. 반아시아, 반페미니즘, 반자본주의." 백인 남성 스타를 사로잡은 '황인종 여성' 오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서구인의 적대감을 '여성은 세상의 검둥이다'라고 요약할 만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연애가 몰고온 오노에 대한 공격은 이들의 결혼이 이룬 전위 예술과 팝 음악의 아름다운 결합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물며 '존 레넌의 여자'로 불리던 오노 요코에 대한 이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조명받지 못했던 오노 요코의 삶과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전시회와 책이 한국에 나란히 첫선을 보이는 올 여름, 그는 일흔 살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오는 21일부터 9월 14일까지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오노 요코'전은 60년대부터 최근까지 40여 년에 걸친 그의 다양한 작업을 한자리에서 돌아보는 회고전이다.

영어 전시 제목인 '예스 요코 오노'가 가리키듯 레넌과의 사랑에 불을 당긴 66년작 '예스(Yes) 페인팅'을 비롯해 대표작으로 꼽히는 '전쟁은 끝났다(War is Over)'와 '파리(Fly)' 등 설치.오브제.비디오.영화.음악 작품과 사진자료.출판물 등 모두 1백26점이 선보인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활동했던 전위그룹 '플럭서스'의 주요 작가였고, 70년대 각종 전위적 축제에서 '해프닝의 여사제'로 활약했던 그는 설치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으며, 가수이자 작곡가였다.

그것뿐이라면 오노 요코를 '투쟁하는 예술혼'이라 부를 수 없다. 그는 또한 정치 참여 예술가로 더 유명하다. 존 레넌과 함께 펼친 '이부자리 속 시위(베드 인)'는 정숙하게 옷을 차려 입고 침대에 누운 오노와 레넌이 소식을 듣고 몰려온 기자들에게 "우리는 그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이벤트였다.

반전 시위에 앞장섰던 두 사람은 "당신이 원한다면 전쟁은 종식된다"는 평화 성명서를 낭독하고 평화의 찬가를 불렀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19일 서울에 오는 오노 요코는 "분단된 나라의 여성들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늘 한국에 가보고 싶었다"며 첫 한국 방문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02-750-7818.

솔출판사에서 나온 '오노 요코' (장혜경 옮김)는 '마녀에서 예술가'로 제 모습을 바로잡고 있는 그의 평전이다. 독일 작가 클라우스 휘브너가 쓴 이 전기는 야심이 대단한 소녀로부터 전투 태세를 갖추고 어떤 난관이 닥쳐도 두려움 없는 '용녀(드래곤 레이디)'로의 변신을 이룬 오노 요코의 칠십 평생이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펼쳐진다.

두 사람이 늘 하나였음은, 여성주의(페미니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오노 요코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답은 '존 레넌'이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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