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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고조선·발해 얘기해 주고 싶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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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만날 야한 만화, 폭력적인 만화나 그리던 작가가 웬 어린이 학습만화냐는 사람들이 많죠?"

생애 첫 학습만화이자 컬러만화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전10권, 녹색지팡이)를 펴낸 이현세(49)씨는 12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질문부터 꺼냈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했다.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 실체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싶었어요. 중국의 한나라와 우리의 고조선이 동시대에 있었던 나라인데, 한나라는 역사적인 실체로 생각하면서 고조선에 대해서는 '까마득한 옛날 국가'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정말 있었나'라고 의심도 하고요."

그의 역사의식은 '창작의 자유'를 놓고 법정 싸움까지 벌였던 '천국의 신화'를 그리면서 얻은 성과물이라고 했다.

"발해나 삼국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자랑스러운 역사예요. 아이들한테 그 얘기를 해주고 싶었죠."

불황에 시달리는 만화계에 나름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학습만화를 고르는 사람은 어차피 부모들일테고, 자신의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이제 학부모가 되지 않았느냐는 계산이 한몫 했단다.

'만화 …'는 그의 히트작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인 까치와 엄지가 과거 여행을 떠나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체험하는 형식으로 펼쳐진다. 까치와 엄지의 캐릭터는 '공포의 …'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가 평소 사용하던 펜 대신 굵은 선이 나오는 플러스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펜으로 그린 날카로운 그림의 만화책은 사주기 꺼릴 수 있잖아요." 시장 반응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 셈이다.

올 1월부터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평생 아쉬운 소리 할 일이 없었는데 요즘엔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국회의원 만나서 사정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가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추진하는 일은 만화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웹진을 만드는 것이다.

"대여방(만화가게) 중심으로 움직이던 오프라인 만화는 한계에 이르렀고, 서점에선 성인 만화는 진열도 안 하고, 온라인 만화는 제값을 받지 못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요."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작품활동은 일단 중단할 계획이란다. "데일리줌과 스포츠서울에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내년 3월에 끝나면 화실을 접고 지금까지 뭘 했는지 정리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다들 잘 내린 결정이라는데 집사람만 '생계 문제'를 내세우며 반대한다면서 멋적게 웃었다.

인터뷰 도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준 뒤 전화를 끊은 그는 "집사람이 갤러리에서 큰 사고(물건 구입)를 치는 모양이네요. 배우자 확인이 필요한 것을 보니 고가품인 모양인데…"라며 다시 웃었다.

"결정은 집사람, 결제는 남편이 하는 게 우리 또래 가정의 보통 모습이잖아요.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으면 그 순리대로 따라야지 안 그러면 다친다는 걸 역사만화 그리면서 다시 깨달았지요."

그렇다면 부인의 찬성을 얻지 못한 '작업 중단'도 그리 오래 가긴 힘들지 않을까.

이씨는 "한국 역사가 녹아있는 세계사를 만화로 엮어보고 싶은데…"라고 '계획'의 한 조각을 드러내 보였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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