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가〉투기 없애는데 실패, 보완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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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땅 값과 집 값 때문에 늘 말썽이다. 기본적으로 땅이 비좁아 그 위에 지은 집이 부족한 판에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 60년대부터 불어닥친 개발붐과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가세, 극심한 부동산투기를 몰고 왔었다.
65년을 기준으로 할 때 83년에 국민소득은 28배, 물가는 8배로 오르는데 그쳤으나 땅값은 1백8배, 집 값은 39배나 뛰어 올랐다.
아파트투기가 극심했던 82년 말∼83년 상반기에 분양우선권을 갖는 0순위통장(5백만원짜리)이 3천5백만∼5천만원에 거래되기까지 했다.
분양만 받으면 이같은 웃돈을 상쇄하고도 남는 이익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일확천금의 한탕주의가 팽배하는 등 사회적 갈등과 마찰이 첨예화되기에 이르렀다.
또 분양가격을 자율화했을 때는 건설업체들에게 부를 축적하는 계기만 만들어 줬다.
정부는 투기를 막기 위해 전매제한·양도소득세중과 등 갖가지 묘책을 내놓았으나 투기에 불은 웃돈을 회수하는데 실패했음은 물론 투기를 막지는 못했다.
정부는 이같은 과정에서 고육지책으로 △주택투기예방 △개발이익의 흡수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자금마련이란 명분으로 지난해 2월16일 채권입찰제를 실시키로 발표했다.
말하자면 아파트 프리미엄의 일부를 정부가 대신회수, 서민주택자금으로 돌린다는 명분이다.
민영아파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집 없는 서민들과는 관계없고 집 없는 서민을 위해 짓는 국민주택기금마련이란 차원에서도 좋은 제도라는 것이다.
특정지역고시·양도세중과 등 각종투기억제조치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투기가 주춤하고 부동산가격도 안정되자 당국은 『정책이 성공했다』고 희색이 만면하기까지 했다.
지난해에 5백억원 정도를 채권을 말아 거둘 생각이었으나 의외로 사람이 몰려 7백7억원을 모았다.
올해에는 6백30억원을 모을 생각인데 벌써 4백억원을 넘어섰다.
프리미엄의 국고귀속이라는 점에서는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 돈은 모두 국민주택기금으로 흡수, 25·7평이하의 국민주택건설비, 또는 임대주택 건설비로 사용된다.
채권입찰제를 처음 실시할 때 정부는『채권을 판돈은 국민주택기금과 별도로 전액 임대주택을 짓는데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예산동결이란 대전제에 밀려 지난해에 정부예산으로 지원했던 4백억원을 올해는 한푼도 주지 않고 채권판돈으로 메울 계획이다.
채권입찰분양 때 소화하는 채권은 연리3%, 20년 후 상환조건으로 팔아 다른 채권과 달리 채권업자에게 팔 경우 액면가의 9%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즉 1천만원짜리채권을 90만원밖에 안준다.
건설부는 이같이 조성한 국민주택기금의 조성원가가 4·6%밖에 안되므로 서민들의 융자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행 국민주택기금융자금리 연10%를 7∼8%로 낮출 계획이나 다른 금리와의 균형문제 때문에 시행이 안되고 있다. 한편 기금조성이라는 차원보다 투기조절이란 차원에서 생긴 채권입찰제가 투기를 막는덴 별 효과를 못거두고 있다.
그동안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던 채권응찰액이 분양가를 웃도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서울개포동 우성아파트 34평형 2군의 경우 분양가는 3천4백65만원인데 채권응찰액은 최고 4천6백50만원, 최저 응찰액은 2천8백56만원으로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분양된 서울가락동 현대아파트의 채권응찰액도 분양가에 거의 육박했다. 현대아파트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락동이 아직은 지역적으로 도심에서 멀고 생활여건이 안갖춰 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채권응찰액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채권입찰제가 실시되기 전 가락동·명일동·길동 등 변두리지역에서 분양되던 비인기업체의 아파트는 행정지도가격(5·7평이하1백5만원)보다 낮은 가격으로 분양을 하곤 했었다. 안양·부천·수원 등 수도권지역에서는 대부분 행정지도가격이하로 분양했었다. 그러나 채권입찰제가 실시되면서 서울변두리지역이나 수도권지역의 분양아파트 모두가 행정지도가격을 제대로 다 받기 시작했다. 주택청약 예금가입자에게 분양우선권을 주는 제도가 수도권지역에 확대되자 안양지역에도 경쟁률이 심화되고 있다.
이 제도가 실시되기 전에 분양한 현대아파트는 지역도 더 좋은데 경쟁률이 2대1에 불과했으나 삼호아파트는 지역도 더 나쁜데 1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투기를 없앤다고 시작한 제도가 심한 경쟁과열로 투기를 없애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채권응찰액이 높아짐에 따라 기존 아파트가격상승을 부채질할 우려도 있다. 집을 늘려 가는 사람들에게는 채권입찰제가 큰 부담이 된다.
대부분 계약금·채권응찰액정도만 마련한 상태에서 계약을 한 후 집을 팔아 중도금을 납부하는 형편인데 집이 안팔려 중도금을 내지 못하게 되고 건설업체는 건설업체대로 중도금이 안걷혀 울상이다.
집을 조금씩 늘려가기가 어렵게 되고 결과적으로 돈 있는 사람들만이 많은 채권을 사고 아파트를 사게되는 꼴이 됐다. 돈 놓고 돈 먹기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채권입찰이 이토록 높아진 것은 기존 아파트값이 워낙 높아 채권을 주고 사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채권입찰제를 통해 그동안 아파트값이 얼마나 올랐는가가 여실히 드러났다. 복덕방의 농간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가 된 개포동 우성아파트의 경우 기존 34평형아파트의 웃돈은 4천만원(로열층 기준), 45평형은 5천만원이나 웃돈이 붙어 채권을 사고도 남기 때문이다. 또 기존 아파트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부는 『종전처럼 행정지도가격으로 분양할 경우 투기가 더 과열되고 가격을 자율화, 시장기능에 맡길 경우 전국에 걸친 주택가격상승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채권입찰제는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아파트값이 높아지는 것은 채권입찰제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주택공급이 부족하고 거기다 일부 투기꾼의 농간이 가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일부 문제점은 보완할 것을 검토중이다.
현재 재당첨금지기간이 3년으로 되어있으나 이를 5년으로 늘려 신청경쟁과열을 막을 것을 검토중이다.
또 국민주택규모 아파트 건설증대를 위해 현재 1백5만원으로 묶여 있는 분양가격의 소폭인상도 검토중이다.
건설부는 채권입찰제가 최선의 대책도 아니고 또 문제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부분적인 보완을 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이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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