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누군 하고 싶어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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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털고 가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2002년 12월 21일 안희정.이광재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선거 이틀 뒤였다. 자신과 관련된 정치자금 의혹과 측근들의 비리 문제가 야당 측에서 솔솔 나오던 즈음이었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제안은 실천되지 못했다. 주변의 참모들이 만류했기 때문이다. (중략)

참여정부 1기 청와대의 숨소리가 공개됐다.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노무현 왜 그러는 걸까'라는 책에서다. 청와대 제1부속실에서 노 대통령을 근접 수행했던 이진 전 행정관이 참여정부 초기 비사를 책으로 엮어 냈다. 다음은 비망록의 주요 내용.

◆ "재신임 발표 막아요"=잇따른 측근 비리 의혹과 관련해 2003년 10월 10일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참모들은 반대했다. "수사가 진척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반기문 외교보좌관) "시기상조다"(문재인 민정수석)라고 했다. 한 측근 참모는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러 청와대 춘추관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자 부속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막아요. 춘추관에 못 가게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막아요"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 "누구는 하고 싶어 하나"=2003년 8월 민정수석실은 청주 나이트클럽 향응 파문으로 물러난 양길승 전 제1부속실장 사건 당시 알맹이가 부족한 보고를 올렸다가 호된 질책을 받았다. 질책을 받은 이호철 민정비서관이 "이번 기회에 사표를 제출하고 싶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누구는 하고 싶어서 하는가"라고 되받았다고 한다.

◆ "링컨의 만장일치"=2003년 3월 대북송금특검법의 수용 여부를 놓고 국무회의가 열렸다. 먼저 통일부 정세현 장관이 "특검법이 남북 대화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어 지은희 여성.윤진식 산자.한명숙 환경부 장관 등도 반대했다. 듣고 있던 노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이 법안을 심의했는데 여섯 명 전원이 반대하자 '만장일치로 통과됐음을 선포한다'고 했답디다"라고 말을 꺼냈다. 대세는 순식간에 특검 수용으로 결론났다.

◆ "안 했는데 어떻게 했다고 하나"=2003년 7월 노 대통령이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공동 기자회견을 할 때 미리 준비된 발표문안과 실제 발언이 달랐다. 참모들이 물었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중 인식을 같이한 일이 없는데 기자회견에서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참모가 "외교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노 대통령은 "내 체질에 맞춰 달라. 추후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지시했다.

박승희.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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