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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방울토마토로 연 50억 매출 일군 색다른 농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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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자천영농조합법인의 박인호(53) 대표가 다양한 색의 무지개방울토마토를 들고 웃고 있다. 박 대표는 올해 5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빨강과 분홍ㆍ주황 등 6가지 색에 진주빛 토마토 등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유럽에는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는 속담이 있다. 토마토를 적절히 먹으면 의사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는 얘기다.

건강 뿐 아니라 인생까지 토마토에 건 남자가 있다. 농자천영농조합법인의 박인호(53) 대표가 주인공. 박 대표는 지난해부터 이마트를 통해 빨강과 핑크ㆍ주황ㆍ녹색 등 6가지 색의 무지개방울토마토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한다. 무지개방울토마토는 이마트가 올해 3월부터 시작한 ‘국산의 힘’프로젝트의 대표 작물이다. 국산의 힘 프로젝트는 이마트가 우수 농산물을 소개해 판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무지개방울토마토는 다른 토마토보다 30% 가량 비싸게 팔린다. 색깔 별로 식감과 맛이 달라서 비싼데도 인기다.

17일 충남 논산의 한 토마토 농가에서 만난 그는 전업 농민과 직장인의 느낌을 두루 갖춘 모습이었다.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박씨는 과거 한 식품회사의 유통 관련 부서에서 10년 넘는 경력을 쌓았다.

유통과 마케팅을 담당한 덕에 외국 출장이 잦은 편이었던 그는 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의 색감 좋은 컬러푸드를 보며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간 관리자까지 올라갔지만 그는 이내 회사생활을 접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2004년 영농조합법인을 세우고 처가가 있는 전남 고흥에서 마늘과 당근 같은 친환경 농산물을 키워내 대형마트에 납품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얻은 ‘감(感)’으로 될법한 아이템을 고른 덕에 재미도 쏠쏠하게 봤다. 하지만 즐거운 날은 잠시였다. 잇따라 등장한 경쟁자들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 사업을 접어야 했다.

2007년 말부터는 우리 밀로 만든 유기농 밀 과자를 내놓았다. 잘 나갈 때는 한 달에 2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유기농 가공식품 시장에 잇따라 뛰어들면서 손해만 5억 원 가량 본채 철수해야 했다. 직장에 돌아가긴 이미 늦은 나이. 세 번째 실패를 볼 순 없었다. 마침 가진 돈도 집 한 채를 제하곤 없었다.

‘농업’에 가능성이 있다는 소신까지 버리진 않았다. 대신 대상 품종을 더 꼼꼼히 골랐다. 기준은 세 가지였다. ① 나만 할 수 있고 ② 소비자가 잘 아는 농작물이면서 ③ 연중 재배 가능한 무엇인가를 고른다는 것이 그 원칙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종자원 직원의 권유로 주황색을 비롯한 컬러토마토를 접하게 됐다. 주황 토마토 등은 국내에 2000년대 중반경 소개됐으나, 기존 빨간 토마토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확률 때문에 시장에서 별 인기를 얻지 못한다는 설명에 무릎을 탁 쳤다. 남들이 한 번 실패한 만큼 성공만 한다면 자연스레 진입장벽도 생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컬러토마토를 키우겠다고 결심한 뒤 그가 한 일은 전국의 토마토 재배 고수를 찾아다닌 일이다. 컬러토마토를 제대로 키우려면 일반적인 토마토부터 잘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때부터 일 년 넘게 주당 4~5회씩 농수산물시장 새벽 경매장을 쫓아다녔다. 매일매일 경매가가 높게 정해지는 ‘고수’가 누구인지 파악한 다음 해당 농가로 찾아갔다. 하지만 재배 노하우를 직접 물어보는 건 불가능했다. 어느 농가에서도 이를 가르쳐 줄리 만무했다. 대신 그곳에서 토마토를 한 상자씩 사와 맛과 식감을 직접 분석했다. 이렇게 찾아다닌 토마토 재배 농가는 전국 150여곳에 달한다. 그는 “충남 부여의 한 토마토 농가에는 한달 동안 18번이나 찾아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끝없이 전국 곳곳의 과수원과 농가를 돌아다닌 탓에 무릎 연골이 거의 닳아버릴 정도라고 했다. 토마토 재배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2011년에는 농협대학에도 진학했다.

컬러토마토 종자는 종묘회사를 통해 이스라엘과 유럽 등에서 들여왔다. 그간 다른 이들이 수없이 도전했지만, 번번히 재배에 실패했던 것들이다. 한국과 유럽, 그리고 이스라엘. 재배조건의 차이를 그는 ‘노력과 과학영농’ 하나로 극복했다. 2011년부터 본격적인 컬러토마토 재배에 착수했지만, 2년 간은 수확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당시 여름이 굉장히 더웠던 탓에 온실 안 온도가 40℃를 넘어서 꿀벌들이 폐사해 수정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같은 땅에 키워도 토마토 색깔별로 수확률 차이가 났다. 그는 아예 자신의 3300㎡ 온실 하우스 한 동을 12 조각으로 나눠 동시에 12가지 방식으로 컬러토마토를 키워냈다. 최적의 재배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계절별 온도조절이나 어떤 영양제를 줄지, 항바이러스 비료를 어느 시기에 줄지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 많았다. 최적의 재배 조건을 만들기 위해 약알카리 성이던 자신의 땅을 중성~약산성으로 바꾸는 작업도 병행했다.
2013년 초, 드디어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어떻게 조건들을 맞출 수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말해줄 수 없다”며 웃기만 했다.

다만 그는 “동시에 12가지 농사를 짓다보니 보통의 농사보다 노력도 10배 가까이 더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재배 아이디어는 떠오르는 대로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으로 옮겨 적었다. 작은 팁이라도 얻기 위해 국내ㆍ외 문헌도 닥치는대로 뒤졌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10시간 이상 하우스에서 살고, 밤에는 토마토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어 아예 하우스 출입을 자제했던 날들이다.

연구개발에 가진 돈과 체력을 쏟았지만, 수입이 없는 날이 3년 여간 계속됐다. 그간 생계는 작은 화원을 운영하던 그의 아내가 맡았다. 적게나마 출하되는 물량을 4년 가까이 사줬던 이마트도 힘이 됐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2013년이 돼서야 무지개 방울토마토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유통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포장을 마친 검은색과 초록색 방울토마토가 갈라지거나 터지는 ‘열과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지막 난관 앞에 좌절할 수 없었다. 짧은 영어로 밤 세워 글로벌 종묘회사에 문제점을 문의하고 꾸준히 문헌을 찾았다. 덕분에 그는 수확 이후에도 상품성이 유지되는 개량 종자를 다시 찾아냈다. 그 품종을 두고 같은 재배실험 과정이 반복됐음은 물론이다. 오랜 고생 탓에 검었던 그의 머리는 이제 백발이 됐다.

그에겐 2014년3월17일이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했다. 그는 “그날은 무지개컬러토마토가 제대로 출하된 첫 날이다”라며 "일주일만 출고가 늦었더라도 돌려막던 카드대금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무지개방울토마토 수확이 제대로 이뤄지면서 그와 그의 영농조합법인은 지난해 20억원 대 매출을 올렸다. 자주 현금서비스를 받아 9~10등급을 오가던 그의 신용등급도 토마토와 함께 1등급이 됐다. 올핸 50억원 가량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본다. 명실상부한 농업 기반 기업가다. 지난해 4월 하루 1000팩(900g 기준) 정도였던 공급량은 현재 하루 2000팩으로 늘었다. 그런데도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란다. 물량을 대기 위해 현재는 그를 포함해 18개 농가(재배면적 약 2만7000평)가 무지개방울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이날 그를 만난 논산의 농가도 그의 협력농가다. 그가 재배노하우를 전수한 농가들이 무지개방울토마토를 키워내면 박씨가 이를 수매해 형형의 색깔별로 포장한 뒤 이를 이마트에 납품하는 식이다.

최근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간의 재배노하우를 활용해 새로운 품종의 컬러방울토마토를 키워내기 위해서다. 이르면 올 하반기 중 진주빛이 도는 하얀색 방울토마토와 포도빛이 도는 검은색 토마토를 본격적으로 출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당도를 수박(평균 9.1Brix)보다 높인 방울토마토 재배법도 연구 중이다. 일반적인 방울토마토의 당도는 8.5Brix가량이다. 그는 “언제든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됐다”며 “맛있고 오래 보관되는 토마토를 끊임없이 개발해 내는 게 나 자신의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논산 =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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