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이승만 대통령(112)|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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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저녁에 미국으로 보낼 대통령의 서한을 타자하다가 부엌으로 차를 끓이려 내려갔더니 비서실의 직원들이 모여 앉아 오징어파티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대통령관저의 경비절감으로 인해 자신들이 겪고있는 어려움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대통령은 비록 작은 종이 쪽지나 곡식 한 톨이라도 절약하여 우리 관저에서 쓰는 비용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은 비서실 휴지통에 쓸만한 종이가 버려져 있으면 그것을 꺼내다가 편지 초안도 적고 붓글씨도 연습하고 있다.
지금 무기부족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우리 장병들은 설상가상으로 전비가 부족하여 겨우 콩나물만으로 부식을 삼고 있는 실정이다.
콩나물이 맛있는 반찬이긴 하지만 계속 먹으면 질리게 마련이라고 대통령은 장병들의 부식을 걱정했다.
대통령은 자기가 구국 투쟁하던 청년시절, 7년에 걸친 감옥생활에서 끼니마다 콩나물국만 먹게되니 나중에는 콩나물국 먹는 것이 지긋지긋 했었다고 말했다.
전쟁의 피해로 불구가 된 가족을 부양하며 헐벗고 굶주릴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대통령은 관저의 경비절약에 그토록 마음을 쓰고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워싱턴대사관의 대리대사 김세선씨와 「올리버」박사에게 편치를 썼다.6
우리는 이 서한을 통해 고황경 박사로 하여금 영국전역을 돌며 한국을 알리는 순회강연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것을 지시하고 그 일을 위한 재정문제를 상의했다.
영국유엔협회 초청으로 순회강연을 하고있는 고 박사는 전쟁의 피해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포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성이라고 여러 사람이 추천하는 말을 우리는 듣고 있었다.
고 박사는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고국에 돌아와 불우한 소녀들과 농촌개혁을 위해 언니 고봉경씨와 함께 『자매원』이라는 기관을 설립하여 봉사하는 한편 이화여전 교수로 봉직한 능력 있는 학자이며 여성지도자라고 한다.
대통령은 자기 조국을 소개하고 자기 동포들을 위해 외국인들에게 연설을 할 경우 여성이 더욱 호소력이 강할 뿐 아니라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한미협회 설립을 자신이 구상해 온대로 적극 추
진토록 워싱턴에 지시하였다. 대통령은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우리 독립운동을 도와주었던 한국우호연맹(League of Friends Korea)과 한미기독교인 우호협회(Christian Friends Korea)를 직접 창설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미협회설립을 위한 추진방법과 요령을 자세히 설명하여 적어보냈다.
한국우호연맹은 대통령이 우리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윌슨」대통령과 그 가족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 은사 및 친지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한국독립운동을 위해 결성한 단체였다. 이 연맹은 미국의 각계각층의 수많은 명사들의 호응과 참여로 미국 각 주에 19개의 지부가 있었는데 우리 나라 독립운동을 위해 큰 힘이 되었었다.
그들은 대통령의 순회강연을 주선하고 경비를 부담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으로 우리 독립운동을 도운 대단히 정의감이 강한 미국 명사들의 단체였으며「맥아더」장군의 장인도 이 단체에 참여하여 대통령을 도와주었다.
또 한미 기독교인 우호협회는 우리 나라에서 선교활동과 육영사업을 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해 주었던 「아펜젤러」씨의 가족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가족이 모여 대통령이 한국독립을 위해 활동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도와준 고마운 단체였다.
한국의 독립과 대통령을 도와준 이 두 단체에 참여했던 미국명사들은 모두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인들이며 그 강한 기독교정신과 정의감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던 한국 편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은 「올리버」박사에게도 한미협회에 관해 설명을 하였다.
『우리는 한국정부의 비용으로 한미협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시작하고 무한정 하게 유지해나갈 충분한 자금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비용으로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빈약한 인상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초기에 약간의 착수금으로 도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 조차도 나는 피하려 합니다. 만일 우리사람들이 내가 제시하는 대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정직하게 일한다면 이 일을 위해 모든 것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금 단시일 안에 10만 명의 회원을 모집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필자주=고황경 박사는 현재 서울여대학장이며 당시 일본이나 공산당의 악선전에 의해 한국과 한국인을 형편 없이 알고있던 영국인들에게 그후 6년에 걸쳐 8백 회 이상의 순회강연을 계속 함으로써 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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