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촛불 4475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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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로 세월호를 만드는 대형 퍼포먼스가 1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펼쳐졌다. 이 행사에는 세월호 유가족, 자원봉사자, 구조 잠수사를 비롯해 시민 4475명이 촛불을 들고 참가했다. 주최측은 이 행사를 세계기네스협회에 ‘사람이 만든 가장 큰 불꽃 이미지’로 등재 요청할 예정이다. [김경빈 기자]

17일 오후 8시55분쯤 서울 중구 서울광장. ‘댕’ 하는 징소리가 울려 퍼지자 4475개의 촛불이 일제히 켜졌다. 그 순간, 어두컴컴했던 광장에 환한 빛으로 이뤄진 배 한 척이 떠올랐다. 시민 4475명이 촛불로 만든 세월호였다. 이날 시민들은 민주주의국민행동과 세월호 국민대책회의가 공동으로 주최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위해 모였다. 시민들이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고, 촛불이 모두 밝혀지면 영국 세계기네스협회에 ‘사람이 만든 가장 큰 불꽃 이미지(Largest torchlight image formed by people)’란 이름으로 등재한다는 것이다. 임진택 극단 길라잡이 상임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부모와 함께 나온 유치원생들부터 60대 장년층까지 다양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구조에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도 포함됐다. 당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을 상징하는 4160명을 목표로 했으나 참가자가 늘면서 4475명이 됐다. 현재까지 기네스북에 등재된 최고기록은 2011년 12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시민 3777명이 횃불을 들고 한 행진이다.

 촛불로 만든 세월호가 떠오르자 광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눈물을 훔치거나 한숨을 쉬는 사람도 보였다. 자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한 김현동(40·서울 번동·자영업)씨는 “1년 전 겪은 슬픔에도 아직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았는데, 자녀들과 함께 세월호가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한연석(21·대학생)씨는 “기존 세월호 행사는 참가하기가 조금 겁이 났는데 기네스북에 등재하는 행사인 만큼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행사는 세월호를 추모하는 시가 낭송됨과 동시에 깃발 신호에 따라 촛불이 꺼지며 마무리됐다. 광장 위에서 보면 촛불로 만든 세월호가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주최 측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1년 전 세월호 참사를 전 세계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4·16 가족협의회 소속 유족 80여 명과 시민 10여 명은 17일 오전 3시부터 서울 경복궁 정문 광화문 현판 앞에서 풍찬노숙을 시작했다. 유족 등은 16일 열린 ‘4·16 추모의 밤’ 행사가 끝난 이후인 밤 9시부터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이 설치한 차벽에 막혀 행진을 중단했다.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집회에서 단원고 박성복군의 어머니 권남희씨가 경찰에 떠밀려 쓰러지면서 갈비뼈 4개가 부러지고 일부가 폐를 찔러 피가 고이는 중상을 입었다”며 “권씨를 강북삼성병원으로 후송했다 안산 소재 병원으로 옮긴 상태”라고 말했다. 또 “18일 ‘인간띠 집회’를 비롯해 유족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종로서 이규환 경비과장은 “현재 유가족들의 경복궁 정문 점거는 미신고 집회이며, 경찰력 동원은 경복궁 관리사무소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며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하지만 세월호 1주기인 것을 감안해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16일 폐쇄됐던 팽목항 분향소는 하루 만인 17일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조문은 받지 않기로 했다.

진도=최경호 기자, 서울=조혜경·김나한 기자 wiselie@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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