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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제값받기 가장 급하다|종합취재…오늘의 농촌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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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정부·여당회의에서 농촌문제가 심각히 논의 되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농촌문제가 심각하며 이대로 가다간 우려할만한 사태가 예상되니 근본적인 농촌대책을 세우도록 여당측이 촉구했다 한다. 그럼 농촌문제는 어느정도 심각하며 왜 그것이 이제야 문제가 되는가. 이제까지는 왜 심각성이 외면 되었는가. 오늘의 농촌, 무엇이 문제인가를 종합취재해 본다. <편집자주>
작년 12월8일 전남구례군 광의면 구만리-. 볏가마를 잔뜩 실은 경운기 10여대가 마을쪽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행렬이 마을입구에 들어서려할 때 관공서차량들이 이들을 막았다. 들어가겠다거니, 못들어 가겠다거니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내용인즉 농지개량조합에 내야 할 수세를 현금대신에 현물로 내겠다는 농민들 주장에 대해 그런 억지를 가지고 시위를 하는 것은 용납지 못하겠다는 대립이었ㄷ.
이들 농민은 현금으로 지불하게돼 있는 수세를 왜 굳이 벼로 내겠다고 했는가. 작년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사들인 쌀값은 2등품기준으로 한 가마에 5만5천9백70원이었다. 그러나 3천7백여만섬의 생산량중 수매물량은 8백만섬으로 한정 됐으니 돈을 만들려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하지만 내다파는 쌀은 5만원 받기도 어려웠다고 한 마디로 더이상 손해는 볼수 없으니 쌀로 받아 달라는게 농민들의 주장이었다.
농촌의 어려운 사정을 수자로 나타낸 것으로 농가교역조건이 있다. 농사를 지어 내다파는 값과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품값을 비교하는 것이다.
요새 농가교역조건은 최악의 상태다. 농사짓는 것이 수지가 안맞아 농가의 살림살이가 매우어렵다는 뜻이다.
농산물을 내다파는 값은 80년을 1백으로 했을 때 작년추수기 10월의 그것은 1백36·7이었다. 그대신 농촌에서 사쓰는 물건값은 80년 1백에서 작년10월 1백56·4로 올랐다.
농촌에서 사다쓰는 값은 56·4% 오른데 비해 내다파는 값은 36·7%가 올랐다.
판매가격지수를 구입가격지수로 나누어서 산출한 농가교역조건은 87·4.
교역조건으로 따져 81년이 99·7, 82년이 94·8이었으니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왔다.
요즘의 물가안정이 싼 농산물값에 크게 힘입은 것이며 그 때문에 농촌사정이 매우 어려움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추곡수매가 동결에 겹쳐 농촌사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작년의 경우 기상이 좋고 농민이 애쓴 보람이 있어 대부분의 농산물이 풍작을 이루었다.
그 대신 값은 큰 폭으로 떨어져 농민들 한테서도 「풍년속의 흉년」 이란 말마저 나왔다.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물가가 사상유례 없이 안정됐으니 농산물 값도 싸져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농촌의 입장에선 농산물값이 떨어져 물가가 안정되고 물가안정 때문에 다시 추곡수매가까지 동결되는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값이 폭락한 것은 농산물 뿐 아니다. 지난해 연초 송아지 한마리가 1백10만원선이었다. 그러던 것이 하반기부터 값이 떨어져 70만∼80만원선까지 내려갔다. 정부의 소입식사업에 따라 마리당 60만∼80만원까지 지원받아 소를 샀던 농민은 1년도 채 못가 손해보고 빚만 짊어지게 됐다. 수입소(도입육우)도 지방이 많다는등의 이유로 한우가격보다 낮아 손해를 본 농민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돼지도 한 때 한마라에 14만원선까지 하던게 7만원선으로 곤두박질하는 큰 진폭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농가의 호당경작면적은 1km미만이며 그나마 전체 농경지의 22·3%가 부재지주의 손에 들어 있어 농가의 46·4%는 이들로부터 땅을 빌어 농사를 짓고 있다. 이러한 형편을 고려할 때 농축산물가격의 하락이 농촌가계에 얼마나 큰 충격과 주름을 안겨줄지는 짐작할 수 있다.
더우기 농민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을 못받고 있는 점이다. 적은 생산물을 수집상의 손에 넘기거나 5일장등 시장에 내다팔아야 하고 그러자니 자연 판매조건이 나쁜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소비지에서 1포기에 9백원하는 배추가 산지에서는 3백원 받기가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최근에는 채소값의 진폭과 마진율이 큰 것을 이용, 중간상인들이 폭리를 겨낭하는 「밭 때기」까지 성행하는 형편이다.
정부는 수집상등을 배제, 농민의 유통단위를 형성하기 위해 몇개 마을을 묶은 협동출하반을 조직하고 있어 금년중 4천5백개의 협동출하반을 7천개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소비지에 나가는 농산물이 대부분은 유사도매시장의 중개인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가격결정은 역시 중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형편이다.
81년의 경우 농가호당평균 부채는 44만원이였다. 그러던게 82년에는 83만원으로 거의 두배에 이르렀다.
정부는 부채의 차입선이 농협·새마을금고등으로 66·7%나 돼 사채등 악성 부채이용은 줄었고『소 한마리 팔면 상환할 수 있는 규모이니 큰 문제가 없다』고 별걱정을 않고 있다.
작년 영농자금 지원규모는 총5천억원이었고 올해는 5천5백억원이다. 2백만 농가로 쪼개면 27만원꼴이다.
해외건설등 다른부문에 손 크게 나가는데 비해선 너무초라하다. 그만한 규모의 영농자금도 전체 자금사정을 고려한 재무부의 분기별자금배정을 받다보면 농민손에는 월3만∼4만원정도 뿌려져 푼돈으로 흩어져 버리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농정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너무나 많은 농수산물수입이다. 수입의 동기와 필요성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주곡은 물론 축산물·특작물에까지 가격상의 영향을 미치고 더욱 심각하게는 국내생산기반의 조성을 늦추고 있는 것이다.
80년에 7백77만t 22억7천만달러어치를 들여 왔던 수입농산물이 81년에는 1천55만t 32억2천만달러어치로, 82년에는 1천9백만t 19억8천만달러로 줄어 들지를 않는다. 식량은 절반을 수입하게 됐다. 83년 식량자급률이 50·2%. 해마다 줄고있다. 이러한 마당에 민정당이 농촌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나마 인식했다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래서 선거가 좋은 것인가 보다. <한남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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