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국제수지 흑자국으로 알더라"|"손 큰 구매"로 급한 불은 끈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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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컬러TV의 덤핑판정을 계기로 한미간의 무역마찰문제가 클로스업 되고 있다. 선거를 앞둔 미국은 한국의 대미출초에 대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며 시장개방에 의한 수입증가를 요구하고 있고 한국이 제2의 일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과잉 경계론까지 겹쳐 보호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금진호 상공장관이 대규모 무역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으로 가 손 크게 물건을 사주면서 한미통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금 장관이 미국에서 느낀 분위기와 수입규제의 실상은 어떤 것이며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과 전망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본사 최우석 경제부장과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대담=최우석 경제부장>
-공교롭게도 컬러TV 덤핑판정이 방미시기와 거의 맞아 떨어졌고 들려오는 미국의 소리도 상당히 격앙된 것이어서 무척 고전하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김포공항 귀국회견을 보니 자신에 차있어 좀 의아한 점도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사람들에게 한국을 바르게 인식시키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자평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입니까.
▲미국은 우리와 가장 깊은 관계에 있는 나라지만 대부분 우리의 경제실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국제수지가 적자라고 하면 깜짝 놀라요. 미국에 대해 출초이고 그토록 수출을 많이 하니 당연히 국제수지도 흑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이니 물건을 많이 사가라는 요구가 강하게 나오는 것이지요.
이번에 각계 사람들을 만나 한국의 어려운 사정, 즉 국방비가 GNP의 6%, 정부예산의 40% 가까이나 된다든지 1년에 나가는 외채이자만도 4O억달러에 달한다든지 하면 모두들 놀랍니다.
그렇게 어려운 점이 있는 줄은 몰랐다는 거지요. 그런 점을 많이 이해시킨 점에선 의의가 컸다고 봅니다.
서로를 정확히 이해하면 그 뒤의 일은 훨씬 쉬운 법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좋은 면만 강조하다가 자화자초한 것이 아닙니까. 과잉홍보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이지요. 우리 실정에 비해 좀 지나쳤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런 면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그동안 대외공신력 때문에 좋은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으론 좀 세련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컬러TV덤핑판정이 평지돌출이 아니라 어떤 흐름의 시작이라고 보는데 미국에서 느낀 점은 어떻습니까. 정말 한국을 제2의 일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미국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크게 평가하는 것은 성장잠재력입니다. 물론 현재의 한국경제에 여러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걸 다 극복할만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한국과 비견되는 신흥공업국으로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 있으나 경제규모나 국민들의 활력면에서 비교가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의 인구·시장규모·국민성으로 보아 일본에 뒤이을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식은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필연적인 추세라면 좋게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번 미국경제인들을 만나 한국시장의 유망성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반드시 클 시장이니 목전의 이익보다 장기포석을 하라고 말입니다. 이미 한국은 미국의 7번째 교역상대국인데 앞으로 4∼5년안에 영국·서독을 제치고 4번째로 올라선다고 하니 새삼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호혜적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산업에 있어서도 이전할 것은 이전하여 과거의 수직적 관계에서 보완적 분업관계로 바꿔 나가자고 역설했습니다.
-호혜적 관계를 너무 강조하여 이번 너무 손 크게 구매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30여억달러어치나 한꺼번에 사지 않았습니까.
금년 경상수지 적자폭을 10억달러이하로 줄일 계획인데 지장은 없겠습니까.
▲이번에 계약한 것은 27억∼28억달러정도인데 이중 17억∼18억달러는 금년 중 어느 때고 사야할 것들이고 나머지 10여억달러가 추가로 산 것입니다.
경제관계란 호혜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만큼 우리도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겠지요. 그러나 10억달러어치를 더 산다해도 그것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팔고 있는 것을 미국시장으로 돌리겠다는 뜻이지 새로 10억달러어치를 더 수입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금년 경제운용계획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느 나라로부터 돌릴 것입니까.
▲우리가 무역적자를 보이고 있는 나라가 대상이 되겠지요.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많은 무역적자를 보면서도 너무 점잖지 않습니까. 미국 같은 경제대국도 한국과의 무역역조가 18억달러나 되니 그토록 거센 압력을 가해 우리는 부랴부랴 구매사절단을 보냈는데 일본에 대해 같은 압력을 가할 생각은 없습니까.
▲일본도 우리에게 구매사절단을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한일무역 역조가 한미간보다 더 심하니 성의는 보이겠지요.
130억달러어치나 물건을 사면서도 거기 상응한 대접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잘못 전해진 것이겠지요. 30억달러어치를 사가는 고객한테 잘못 예우를 할 만큼 미국이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이번 구매활동을 하면서 여러 지방을 누볐는데 주마다 유치·판촉활동이 굉장했습니다. 자기네 물건을 사도록 요청하는 대신 지역출신 상하의원들을 동원하여 때로는 압력도 가하고 때로는 지원사격도 해주었습니다. 미국은 다원사회로서 정치인·경제인·행정부·소비자단체가 서로 견제기능을 갖는 천적관계가 아닙니까.
쌀도 사고 원면도 사고 또 석탄도 사면서 우리편을 많이 만들어 좋은 여론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지요. 같은 미국에서 물건을 사도 어느 지역에서 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는 것이므로 신중히, 또 슬기롭게 해야 합니다. 박동선 사건이후 미국의원들이 한국을 많이 기피했는데 이번엔 선거구이해와 직접 관련되니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의사당에서 우리를 위해 티파티를 열어주고 많은 의원들이 참석했습니다.
-컬러TV덤핑문제는 어떤 논리가 맞섰습니까.
▲「볼드리지」상공장관은 컬러TV덤핑판정은 불공정거래에 대한 대응책이지 수입규제는 아니라고 대답해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나면 피해보상을 받지만 피의자가 완전 원상회복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덤핑판정의 조사에 들어가면 수입업자는 수입선을 다른 데로 바꾼다. 후에 그 상품에 대해 덤핑이 아니라고 판정을 내리더라도 이미 한국수출업자가 본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한국수출업자측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수입규제나 다름이 없다. 한국상품에 대한 미국측 덤핑제소가 81년 1건, 82년 4건이던 게 83년에는 16건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확실히 지나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측도 어느 정도 수긍했습니다.
-컬러TV에 대한 덤핑마진율이 당초에는 평균 3·15%로 예비판정 됐다가 나중 상무성의 최종판결때는 13·9%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비판정 후 조사단이 한국에 왔으나 체류기간이 1주일에 불과했습니다. 현지조사기간이 너무 짧아 한국측 회사들이 제시한 자료도 자세히 검토하지 못했을 것으로 봅니다.
-충분히 조사를 못했으면 예비조사때와 비슷해야지 너무 높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고려는 없었습니까.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그럼 컬러TV판정은 어떻게 결말날 것으로 봅니까.
▲오는 4월9일 미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국TV의 덤핑이 미국에 유해한지 여부에 대한 최종판정을 내릴 것입니다. 유해판정을 내릴 경우 한국은 즉각 재심을 청구할 것이며 이 재심청구를 미국은 성의 있게 받아들일 것으로 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없습니까.
▲상대국사정이 있기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성의 있는 조처를 기대해도 좋다는 것은 말할수 있습니다.
-사전에 막지 못했다고 성토가 많이 나왔는데….
▲선거를 앞둔 미국의 분위기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눈으로만 미국을 봐선 안됩니다.
컬러TV문제는 한미통상회담에서도 주쟁점이었습니다. 공식회담 마지막 날 상오10시로 예정된 폐막식을 30분간 늦추면서까지 우리측 입장을 미국에 설명했습니다. 「볼드리지」 상공장관도 상당히 이해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해를 한다해도 행동엔 한계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쌓인 문제들이 한번에 해결되겠습니까. 평소 좀더 미국의 다원사회에 파고들고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그 점이 부족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신뢰관계의 구축이 절실합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만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경제발전에 따라 각종 경제마찰이 예상되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길게 보고 준비를 해야지요.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국제감각에 맞는 세련된 대응자세를 길러야 합니다.
-「아무리 늦어도 아주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격언도 있으니 앞으론 기대를 해도 되겠지요. 내년 한미상공장관회담 땐 무척 수월하겠습니다.
▲문제란 늘 새로운 것이 생기는 법이니 내년엔 또 다른 쟁점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상호의 공동인식이나 신뢰의 바탕만 되어있으면 훨씬 스무드하게 일이 풀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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