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도깨비 구석구석 취재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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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2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중앙상가 C동 입구.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입구에서부터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지하상가에 들어서자 채 한 평도 안될 듯한 상점들이 환한 불빛 아래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통로를 메운 손님들로 걷기가 불편할 정도다.

C동은 D.E동 상가와 지하로 연결돼 있다. 이렇게 연결된 C~E동 지하수입상가는 흔히 '도깨비 상가'로 불린다. 수입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구호물품과 암암리에 수입한 물품을 팔다 단속반이 나오면 도깨비처럼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입 자유화로 예전만큼의 명성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도깨비 상가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수입품이 팔린다.

◆ 수입품이라면 없는 게 없다=C~E동 지하 수입상가에 들어선 점포는 약 1500개. 1m도 안될 듯한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의류.식품.액세서리.화장품 등 온갖 수입품 판매점이 가득하다. 판매되는 수입품의 종류가 얼마나 될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도깨비 수입상가 운영위원회 김명철 회장은 "수입품은 없는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며 "의류.식품만도 수천 종으로 이곳에서 팔리는 수입품이 10만 종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앙증맞게 생긴 2000원짜리 일제 이쑤시개 케이스부터 육포.양주.신발은 물론,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이탈리아제 가구까지 다양하다. 루이뷔통.샤넬 등과 같은 이른바 수입 명품 잡화와 가전품을 파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상가 관계자는 "가전품은 전문 상가로 자리를 옮겼고, 명품은 정식으로 수입해 팔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일부 팔리는 명품은 홍콩 등에서 수입해 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최대 장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상인들은 대부분의 제품이 백화점이나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30% 이상은 싸다고 말했다. 화장품 판매점에서는 일제 'SKⅡ클렌징 오일'을 4만7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상점 주인은 "백화점 등에서는 정가 6만5000원에 팔리는 제품"이라며 포장용기까지 보여줬다. 영국제 버버리 남성 반지갑은 28만원으로 백화점보다 12만원 싸다고 가게 주인은 말했다. 로열살루트 21년산(500㎖)은 한 병에 9만5000원 선. 일반 유통매장에서는 12만원 내외라고 했다.

이탈리아 수입 가구 판매점 관계자는 "백화점이나 논현동 전문 가구 수입점에서 300만~400만원 하는 가구를 150만~200만원에 판다"고 말했다. 신발도 한 켤레에 2~3만원짜리에서 10만원짜리까지 주머니 사정에 맞춰 고를 수 있다.

◆ 가짜는 없을까=인근에 직장이 있어 수입상가를 가끔 찾는다는 회사원 김모(31)씨는 "구경거리도 많고 물건이 싼 것도 좋은데 가짜일까 싶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깨비상가 김 회장은 "가짜와 불법 수입 상품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식으로 허가받은 수입회사나 수입상을 통해 들여와 판다"며 "개인적으로 가게주인이 외국에서 들여와 팔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든 정식 통관 절차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관련 당국이 한 달에 서너 번 나와 수입 허가장이 없으면 바로 단속한다는 것이다.

서울 중구청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도깨비상가에 불법 수입품이나 모방품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들어 각종 단속에서 가짜 제품 등이 적발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가짜가 없는데 어떻게 싸게 팔 수 있을까. 상인들은 유통 단계를 줄였고, 매장 임대료가 백화점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입상을 통하든 직접 외국에 나가 물건을 사오든 유통 단계를 백화점 등에 비해 줄였다는 것이다. 또 시장 환경이 열악한 만큼 판매 비용이 덜 들어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도깨비 상가는 재래 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통로가 좁고 주차가 쉽지 않으며 같은 제품도 점포별로 약간씩 가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산 남성용 스킨 로션(스킨브레이서.180㎖)을 한 곳에서는 5000원에, 또 다른 한 곳에서는 6000원에 팔고 있었다. 정가가 표시돼 있지만 흥정해 값을 깎을 수도 있다.

일부 상점은 소액으로 구매할 때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기도 한다. 또 환불 등이 쉽지 않으므로 고가의 가구 등을 구입할 때는 물건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글=염태정,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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