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주자들 '兵風'에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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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004년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을 위한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민주당 후보들의 병역문제가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9.11 테러와 이라크전을 거치면서 국가안보.위기 관리 능력이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로 떠오른 데다 후보들의 연령이 모두 베트남전 참전과 반전운동이라는 민감한 시절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당 후보로 예정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공군기를 몰고 항공모함에 착륙했던 일이 이 같은 '군복'이슈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마치 논란을 기다렸다는 듯 현재 민주당 후보 9명 중 병역을 제대로 마친 이는 존 커리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한명뿐이다.

나머지는 대학생 자격으로 병역을 연기한 후 건강.자녀출산 등으로 면제받았거나 집 근처에서 비상근으로 복무하는 지역방위군 출신 등이다.

하워드 딘 버몬트주지사가 가장 먼저 구설에 올랐다.

그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71년 예일대 학생으로서 징집을 연기한 뒤 4학년 때 등뼈 이상이란 진단서를 제출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러나 최근 "대학 졸업 후 수년 동안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스키를 즐겼다"는 지역언론 보도로 곤경에 처해 있다.

다른 후보들은 변명에 바쁘다. "학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에 못 갔지만 아버지 형제들은 모두 군복무를 마친 군인가족 출신"(데니스 쿠치니치),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모두 지지한 유일한 민주당 후보"(조셉 리버먼), "이라크전을 가장 먼저 지지했다"(리처드 게파트), "국가안보와 관련한 최고 정보.정책을 다룬 상원 정보위원장 출신"(밥 그레이엄)….

자연히 가장 자신만만한 사람은 해군 침투부대 소대장으로서 메콩강 삼각주를 누볐던 존 커리 의원이다.

그는 "나는 최전선을 이미 누벼봤기에 어떤 이처럼 백악관 상황실에 앉아서 전쟁교육을 뒤늦게 받아야 할 일이 없다"며 부시 대통령을 꼬집었다. 부시도 베트남전에 참전한 게 아니라 텍사스주 방위군(공군)에서 근무해 지난 대선 때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커리 의원에게도 약점이 있다. 제대 후 베트남 반전운동에 적극 가담했고 71년 백악관 앞에서 벌어진 '참전용사 훈장 버리기'행사 때 자신의 훈장은 집에 놔두고 남의 훈장을 내던졌던 사실이 지난 84년 폭로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최근 "유권자의 29%가 병역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겠다"고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포스트는 "결국 유권자는 국정수행 능력을 중시하겠지만 9.11 이전보다 후보들의 군복무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베트남전 징집은 종전 1년 전인 73년에 끝났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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