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사연 간직한 채… 헐리는 「서울의 명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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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의 도심 재개발로 시민의 애환과 역사가 깃든 명물과 명소가 숱한 사연과 함께 하나하나 사라져 가고 있다. 이미 76년에 반도호텔이 헐리고 3·1운동의 사연이 얽힌 구태화관과 기독교 대한감리회관이 자취를 감췄으며 명문 남대문국민학교와 신신백화점도 흔적이 없어졌다.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 27년 역사의 국제극장, 최초의 극장식 맥주홀 무교동 엠파이어, 3선개헌 날치기 통과 장소였던 구국회 제3별관 등도 헐린다. 또 멀지 않아 상업은행도 헐리고 명동·마포·양동·서소문·무교동 일대도 새로운 빌딩 숲으로 바뀌게 된다.
이른바 「건물의 세대 교체」.
구 국회 제3별관과 그 옆의 동양화재 건물(무교 12지구)은 동산토건과 동양화재에 의해 이미 재개발사업이 확정, 인가단계에 있다. 두 회사가 합작으로 지상 18층·지하 3층 건물을 짓는다.
제3별관자리는 69년 9월 14일 상오 2시 0분 공화당과 정우회의원 1백 22명이 야당 몰래 모여 3선 개헌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굴욕의 장소. 그후 세심판소로 쓰이다가 지금은 외무부 여관과가 들어 있는데 두산그룹이 작년에 합동빌딩과 바꿨다. 7∼8월쯤 건물을 헐고 동산이 사옥을 짓는다.
화신백화점은 인근 사법서사회관·명보빌딩·천보당안경점·신생백화점과 함께 올해 말쯤 헐릴 것으로 보인다. 신생을 중심으로 재개발준비위원회를 구성, 서울시에 지상 18층·지하 4층의 백화점을 짓는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는데 정작 화신은 아직 가입도 하지 않았다. 돈 사정이 좋지 않기 대문인 듯. 그러나 서울시는 재개발위원회를 통해 사업을 강행할 계획.
한때 박흥식 사장의 부의 상징이었던 화신은 그가 35세이던 37년 11월 세운 근대 르네상스식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지상 6층·지하 1층에 연건평 2천 35평. 당시 한국인이 세운 가장 큰 건물로 장안의 명물이 됐으나 화신의 쇠퇴와 함께 10여년 전 건물 절반이 신생으로 넘어갔다.
광화문 네거리의 국제극장은 27년 전인 57년 4월 문을 연 개봉관으로 대지 5백 78평에 연건평 7백 80평, 객석수 1천 4백 5석이다.
국제극장은 처음 김부전씨(여)가 세웠으나 67년 동아흥원이 인수, 경영해 오고 있다. 그동안 십계·대부·러브스토리·정글북·타워링·슈퍼맨·자유부인·저 하늘에도 슬픔이·정복자 등 국내외 평화를 상영, 영화팬들의 추억의 고향이기도 하다.
현재 국제극장측은 주변 토지 소유자와 합자로 지상 16층·지하 4층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있으며 새 건물에 극장을 앉힐 것인지 말 것인지 궁리 중.
장안의 술꾼이면 한두 번 들렀음직한 무교동 엠파이어는 68년 고 최규영씨 등 4명이 합작해 만든 국내 최초의 극장식 맥주홀. 노래와 춤과 코미디를 섞어가며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넓은 대중 술집으로 혜은이·이은하·현숙·김연자 등이 무명 시절 이곳을 근거로 노래를 불러 스타덤에 올랐다.
엠파이어는 82년 전기공사업을 하던 박순룡씨(44)가 지주들과 3년 계약으로 인수, 경영하고 있는데 그는 술장사해서 번 돈으로 불우아동 1백여명을 데려다 키우고 공부시키는 숨은 독지가.
이곳의 지주들은 현재 우성건설을 중심으로 5층짜리 빌딩을 지을 계획이나 새 건물이 들어서면 엠파이어는 영원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신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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