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수사팀과는 별도의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성역 없이 수사한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일요일인 12일 오후 2시에 소집하고 김수남 대검 차장이 주재한 긴급 간부회의에서 2시간 격론 끝에 내려진 결론이다.
수사가 본격 시작되면서 가장 큰 관심은 ‘2012년 대선자금 수사’로까지 이어질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지난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8명 가운데 ‘홍문종 2억’이라는 다섯 글자가 의혹의 발단이다. 여기에 더해 “2012년 대선 때 홍문종(당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조직총괄본부장) 새누리당 의원은 조직을 관리하니까 2억 정도 줬다”는 성 전 회장의 육성 증언이 추가 공개되면서 대선자금 의혹에 불이 지펴졌다.
일단 특별수사팀은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와 그의 주장대로 홍 의원에게 실제로 돈이 건네졌는지를 확인한 뒤 이후 돈의 성격을 조사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광범위한 계좌 추적과 성 전 회장의 핵심 측근, 수행비서 등 비자금 조성 및 흐름에 관여한 사람들을 전방위로 조사한다는 의미다.
홍 의원을 포함해 2012년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에서 실무를 총괄한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 3명이 주요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 때 직능총괄본부장을 지낸 유 시장과 당무조정본부장이었던 서 시장은 각각 3억원, 2억원 수수 의혹이 불거졌다. 만약 수사 과정에서 유·서 시장에게 돈이 갔다는 시점이 2012년께로 드러나면 성 전 회장은 박 캠프 쪽에 총 7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한 셈이 된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성 전 회장에게 단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은퇴하겠다”고 말했다. 유 시장은 “내가 대선 때 자금을 받았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직능본부에 수 많은 전 현직 의원들이 있어서 개개인을 일일이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서 시장도 “대선 때 법적으로 규정된 선거자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다른 돈은 일절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성 전 회장은 대아건설 대표였던 2002년 당시 자유민주연합 측으로부터 지자체 선거자금 30억원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회사 하도급업체에 부풀려 지급한 대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총 16억원을 조성해 불법 후원금을 제공했다. 횡령 혐의로 기소돼 2004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대선자금 수사와 별개로 윤모씨를 통해 2011년 당 대표 경선 당시 1억원을 받은 의혹에 휩싸인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 성 전 회장이 자살 전날 배신감을 토로했던 이완구 국무총리와 관련한 진상도 규명돼야 한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대검 중수부가 2003년 이른바 ‘차떼기’ 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선 지 12년 만이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이 고속도로에서 LG그룹 측으로부터 현금 150억원을 트럭째 인계받았다는 정황과 관련해서다.
진상 규명이 어느 정도까지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수사 성과에 따라 현 정부의 도덕적 정당성이 훼손되고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2013년 6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한 채동욱 전 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낙마한 경험에 비춰 임기 2년차를 맞은 ‘김진태 총장호’의 명운이 이 사건에 걸려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12일 대검 간부회의에서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은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만으로는 진상 규명에 어려움이 예상되나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만큼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로 내놨다고 한다.
한편 경향신문은 이날 “지난 9일 성 전 회장의 인터뷰 녹음파일 원본을 검찰에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성 전 회장이 본지 기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왔고 통화가 시작되기 전 ‘(대화 내용을) 녹음해 달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동안 ‘세상에 알려 달라’ ‘꼭 보도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글=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