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청소년 음주 교육 - 술 강요하면 이렇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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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고1)는 술이라면 기겁을 하기 때문에 음주교육 필요성을 못 느꼈죠. 그런데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으로 집 밖에서 자고 올 때마다 애가 하소연을 하는 거예요. 친구들 대부분이 여행 가면 술 마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술 안 먹는 자기만 외계인 취급을 받는다나요. 청소년 음주교육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 싶었죠. 그런데 방법을 모르니 답답해요." 분당에 사는 주부 김모씨

청소년 음주교육은 꼭 알코올 남용 문제가 있는 아이뿐 아니라 모든 청소년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2004년 전국의 초.중.고생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음주 실태 조사'에 따르면 63%가 음주 관련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교육받은 사람도 비디오나 브로슈어 등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았을 뿐, 체험을 통한 실질적인 예방교육은 없었다.

◆ 청소년 넷 중 하나는 "필름 끊겼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 음주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제사 때의 음복 등 한 번이라도 술을 마셔본 경험이 있는 평생 음주율은 74.4%. 1999년 60.2%, 2002년 70.4%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게다가 청소년의 44.9%가 취한 경험이 있고, 필름이 끊긴 경험도 24.2%나 됐다.

청소년들은 왜 술을 먹을까. 바로 호기심(52.4%) 때문이다.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의 저자인 장병혜 박사는 "어른을 흉내 내기 가장 쉬운 것이 음주와 흡연"이라며 "성장기에 술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적절한 음주교육을 받지 못해 호기심이 비뚤어진 음주행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위 조사에 따르면 술을 먹은 청소년의 절반 가까이(44.8%)가 생일파티 등에서 대인관계 유지를 위해 술을 먹는다. 한국 대학생 알코올 문제 예방협회(한국 바커스)의 1998년도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많은 청소년이 친구(44.5%)에게 술을 배우고, 이후의 정기적 음주 대상도 동년배 집단이 70%를 넘는다.

이처럼 또래와 어울리기 위해 술을 먹기 때문에 음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나 음주예절 등을 배울 기회가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술을 원치 않는 청소년까지 알코올 오남용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 또래 압력엔 재치있게 대처를=미국 등 서구에서는 '아니라고 말하라(Say No)'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가르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왕따'만 당한다. 그렇다고 친구가 부어주는 술을 무조건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알코올 문제의 예방과 알코올중독자의 치료를 위해 설립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KARF)는 상황극을 통해 또래 압력에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한다.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술을 마다하지 못하는 사회적 음주 상황에 처했을 때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거절하는 갖가지 묘수 말이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KARF의 예방교육팀 김승수 선임 연구원은 "상황극에서 튀어나온 학생들의 즉흥대사 가운데 '난 술만 먹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거나 '나 지난번에 술 먹다 응급실에 실려 갔다'등은 다른 청소년들도 쓸 수 있는 재치있는 말들"이라고 소개했다.

◆ 외국에선 어떻게 교육하나=우리 못지 않게 음주문제가 많은 영국에선 이미 청소년 음주교육이 자리 잡았다. 술 제대로 알기(drinkaware.co.uk)등 다양한 사이트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8~11세엔 특별한 날 혀끝으로 살짝 맛을 보게 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물론 특별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를 분명히 설명하고, 부모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말해야 한다. 12~14세는 알코올에 대해 설명하는 시기.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함께 얘기해 준다. 또 잘못된 알코올 상식은 바로잡고 알코올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도 일러 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15~17세는 또래 집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이므로 아이가 누구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부모가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 음주교육을 원한다면=KARF의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거친 대학(원)생 음주문제 예방 전문가로 이뤄진 드림 바이러스는 중.고생 대상 음주예방 프로그램 4HC(4 Hours Change with Dream Virus)를 시행하고 있다. 중.고생이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 놀이 등을 통해 예방교육을 한다. 나이 든 연구원에 비해 청소년들과 심리적 간격이 좁은 사람들이라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대학생들의 건전 음주문화 조성과 알코올 및 약물중독에 관한 연구, 조사, 교육, 홍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영리 민간단체인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 예방협회(한국 바커스.02-823-0913)에 연락하면 해당 지역의 드림 바이러스 회원과 연결시켜 준다.

안혜리 기자

*** 미국의 음주교육은

부모부터 음주 모범 보여야
술로 스트레스 풀거나 술자리 얘기해선 안 돼

모든 교육이 그렇지만 음주교육도 왕도는 없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이 마련하고 있는 부모를 위한 음주교육 지침은 우리에게도 적용할 만하다. 다음은 청소년 음주실태 등을 조사하고 치료를 돕는 미국의 '알코올 등 약물의 중독.오남용 예방센터'(National Center on Addiction and Substance Abuse)가 청소년의 알코올 등 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한 부모 가이드. 이와 함께 미국 보건부(Health and Human Service Department)가 제시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지침'도 소개한다.

◆ 부모 가이드=▶부모가 모범이 돼라▶아이가 어떤 친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라▶가족이 정기적으로 저녁식사를 함께하라(미국 조사에 따르면 가족과 저녁식사를 자주 하는 청소년의 음주 비율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아이와 함께 음주에 관한 규칙을 만들고 철저하게 지켜라▶자녀와 신뢰 깊은 관계를 만들어, 항상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라▶아이의 음주가 위험상태인지 알려주는 경고 사인(갑자기 친구가 바뀐다거나 비밀이 많아지고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유 없이 돈을 빌리는 행동 등)을 숙지하라▶문제가 드러나면 즉시 조치를 취하라.

◆ 주의할 지침=힘든 문제가 생겼을 때 술이 해결책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마라. 예를 들어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어, 술 한잔하면 좋을 텐데…"라는 식의 언급을 피해라. 대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라. 하나 더. 술 마시며 일어났던 경험을 얘기하지 마라. 아이들은 이 얘기를 들으며 술을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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