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유민영(연극평론가·단대교수) 만해를 너무 이상화, 연극적 긴장감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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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공회 뒷골목에 3백석 정도의 세실극장이 있다. 연전 연극인회관으로 쓸 때는 한국연극의 중심지 역할도 했던 극장이다.
3·1절을 기해 요즘 그곳에서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가 뮤지컬화 되어 공연되고 있다. 장사진을 뚫고 객석에 앉으면 환상적이면서도 유치한 배경화가눈앞에 다가선다. 그것이 곧 천상계로서 작품의 서장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 그림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줄곧 배경화가 됨으로써 전체를 경박스럽게 한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되면서 귀를 따갑게 하는 강렬한 음률과 함께 관중을 흥미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경음악과 불교음악을 뒤섞은 듯한 음률은 적당한 율동과 함께 관중의 눈과 귀를 계속 끌어당긴다. 더구나 이야기가 천상으로부터 지상으로 하강했다가 다시 승천하는 것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환상적인 분위기와 함께 현기증조차 느끼게 한다.
그런 속에서 동학운동 이후의 근대사가 점묘식으로 펼쳐지고 한용운이 불세출의 거인으로 서서히 부각된다. 그 대쪽같고 강철같았던 신념의 투사가 고뇌의 노래를 부르는가하면. 출가 전에 남은 아들이 엿장수가 되어 14장면 사이사이에 어릿광대처럼 나타나 그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의 인간적 측면과 갈등을 부각시켜 보겠다는 의도에서 삽입된 것이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인물들을 너무 왜소화시켰기 때문에 한용운이 부각되는 대신,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죽어버림으로써 전체적으로 연극적 긴장은 없고 인물소개로 끝나고 만다. 사실 완벽한 인물은 작품의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김상열은 만해를 너무 이상화시켰다. 바로 그 점에서 작가가 그리려던 탁월한 인물상과 그 경박한 표현형식이 이질감을 야기 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만해는 그 근엄한 생애가 경쾌한 율동을 생명으로 하는 뮤지컬에는 적합치 않을지도 모른다. 하긴 예수도 주인공이 되는 판에 만해라고 못될 것은 없으리라. 그런데 이땅에서도 창작뮤지컬이 가능하다는 예증을 보여준 무대였다는데 의미가 크다.
특히 뮤지컬 연출을 여러 번 해본 김상렬의 계산된 구성과 표현기교는 매우 좋았다. 만세운동을 율동으로 표현한 것이라든가 대소도구의 적절한 활용이 돋보였다. 그러나 무대가 너무 좁은 것이 문제였고 녹음이 작품의 격을 떨어뜨렸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한용운을 다시 기억은 했지만 작가가 실제인물을 그릴경우 역사연구도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근자 3·1운동은「월슨」의 영향이기보다 오히려 자생적인 민중혁명이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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