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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정상 오른 '괴동' … 모든 것 내려놓으니 술술 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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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무려 15년 만에 바둑계 정상 타이틀을 찾은 목진석 9단. 그는 “오랜 슬럼프 끝에 우승을 차지한 만큼 감회가 더욱 각별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2일 제20기 GS칼텍스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프로기사 목진석(35) 9단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본 기사입니다. 목 9단을 만나 인터뷰하고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그의 심경을 재구성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바둑TV 진행자가 재차 GS칼텍스배 우승 소감을 묻는다. 자꾸만 가슴이 벅차올라 말을 잇기 어렵다. 한참 마음을 다잡다 간신히 입을 뗐다. “한없이 기쁘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항상 믿고 응원해 준 아내와 아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목진석이다. 네 살 때 아버지께 처음으로 바둑을 배웠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1994년 입단한 뒤 활약이 대단했다. 입단 1년 만에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중국의 녜웨이핑(<8076>衛平) 9단을 무너뜨렸다. 그때 생긴 별명이 ‘우주에서 온 소년’이다. 98년 신인왕을 따냈고 2000년 KBS 바둑왕전에서 이창호 9단을 2대 1로 누르며 첫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7년에는 122차례 대국에서 93승을 거두며 이창호 9단이 보유한 한 시즌 최다승(90승)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엔 준우승만 8번 차지했을 뿐, 우승의 기억은 희미해져 갔다.

1988년 제9회 해태배 어린이 바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무렵의 모습. 여덟 살의 목진석군이 아버지 목이균씨와 바둑을 두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8월부터 올해 초까지는 9연패의 늪에 빠져 있었다. 가장 길고 힘들었던 슬럼프였다. 아무리 허우적대도 헤어나올 길이 없었다. 유리했던 바둑도 어이없이 막판에 뒤집어졌고 ‘한 판’ 이기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해도 바둑이 풀리지 않았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점점 승부에 대한 자신감이 약해졌다. 앞으로 프로기사로서 일선에서 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더 답답한 건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거였다. 그저 평소대로 바둑 공부를 하면서 묵묵히 견뎌내는 수밖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네 살 된 아들 은찬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악몽 같은 9연패의 사슬을 끊어낸 건 제20기 GS칼텍스배 본선 첫 번째 대국에서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심정이었달까. 지난 2월 5일 김정현 5단과의 대국에서 175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며 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다. 이어지는 이세돌 9단, 김명훈 초단, 최철한 9단 등 나보다 랭킹이 높은 선수들과 대국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대국 도중 실수도 나의 평정심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평소에는 실수를 하면 크게 당황해서 또 다른 실수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수에 얽매이지 않고 침착하게 뒷수습을 했다. 그리고 최철한 9단과의 결승 대국, 첫 번째 판에서 불계패했지만 이어지는 대국에서 세 번 모두 승리하며 우승할 수 있었다. 15년 만에 다시 차지한 타이틀이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다시 이기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승 대국 돌을 정리하면서는 가족들 생각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내와 은찬이, 처음 바둑을 가르쳐주신 아버지 그리고 묵묵히 뒷바라지해주신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모두 잔뜩 심장을 졸이며 나의 결승 대국을 TV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겠지. 나중에 들어보니 가족들은 우승 소감을 말하는 나를 보며 TV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우승 이후 찾아뵌 자리에서 “왜 사내 자식이 울고 그랬느냐”며 웃음 섞인 핀잔을 잊지 않으셨다. 이제야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한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목진석의 가족. 아내 김민정씨(왼쪽)와 아들 목은찬 군은 목 9단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내 나이 35살, 바둑 기사로서 전성기는 이미 훌쩍 지났다. 앞으로 내가 또다시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10대, 20대 기사들이 활약하는 바둑계에서 30대는 승부사보다는 조력자가 어울리는 나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 일선에서 승부사로 뛰면서 나만의 개성이 있는 바둑을 만들어 가고 싶다. 90년대 바둑 사이트 ‘네오스톤’에 가입할 때 스스로 만든 아이디 이름이 ‘괴동(怪童)’이었다. 이후 괴동은 나를 부르는 또다른 이름이 되었다. ‘괴상한 아이’라는 뜻의 이 아이디에는 틀에 박힌 평범한 바둑보다 독창적이고 특이한 수를 많이 두자는 나의 바람이 들어 있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프로기사라면 1인자의 바둑을 무조건 모방하기보다는 ‘자기만의 바둑’을 둬야 한다.

 올해부터 나는 바둑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또 다른 바둑 인생을 살고 있다. 나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관리하며, 바둑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제 4개월째여서 아이들과 많이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차츰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사춘기 10대 선수들을 보면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이런저런 생각도, 고민도 많았던 시절이었는데. 참, 이번 우승을 계기로 어린 선수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 같은 사람도 우승할 수 있다. 어리고 앞날 창창한 너희는 나를 봐서라도 더 힘을 내!”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목진석 9단=1980년생. 94년 14세에 입단. 입단 초기 무서운 기세로 세계 최강자들을 무너뜨리며 ‘포스트 이창호’로 주목을 받았다. 96년 신예기사상, 98년 최다승기록상, 2009년 우수기사상을 받았다. 2000년 제19기 KBS 바둑왕전 우승, 2001년 제13회 TV아시아 준우승, 2004년 제8회 LG배 준우승 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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