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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래미안 169억 공원사용료 … 대법 4년 새 정반대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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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반포주공2단지 재건축조합은 대법원 판결의 대상인 기존 서초구 소유 공원과 비슷한 크기로 단지 내에 공원을 새로 지었다. [사진 서초구청]

아파트 재건축 사업 부지에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원이 포함돼 있다면 재건축 조합은 공사 기간 동안 공원 사용료를 내야 할까. 대법원은 2011년에는 사용료 부과가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으나 최근 같은 사건에 대해 사용료 부과가 잘못이라고 정반대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엇갈리는 하급심 판결을 바로잡아 법적 안정성을 구현해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반포주공2단지 재건축 정비사업조합(현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이 서초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 재상고심에서 최근 “60억원의 사용료를 내라고 한 원심판단은 위법하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사연은 이렇다. 서초구는 2009년 5월 재건축조합에 169억여원의 공원사용료를 부과했다. 당시 재건축 사업 부지에는 서초구가 소유한 1만3606㎡ 규모의 공원 부지가 들어 있었다. 공사 기간(2006년 3월~2009년 7월) 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막았으니 대신 사용료를 내라는 것이었다. 서초구는 조합이 해산되면 돈을 받지 못할 것에 대비해 조합 은행계좌의 예금 170억원을 미리 압류했다. 그러자 조합 측은 대형 로펌인 김앤장·광장을 선임해 “법률상 공원사용료가 면제된다”며 소송을 냈고 서초구는 화우를 선임해 대응했다.

 1, 2심에선 조합 측이 승소했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2010년 “재개발 사업에 있어서 국공유지 사용료를 면제한다고 본 조항은 재건축 사업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사용료 부과는 잘못”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지난 2월 퇴임)의 판단은 달랐다.

2011년 2월 원심을 깨고 “사용료 부과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공공적 성격이 강한 재개발 사업에 대한 면제조항을 민간 재건축 사업으로까지 확대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랐다. 다만 감정가만 다시 계산해 “조합은 서초구에 60억원의 사용료를 내라”고 판결했다. 양측은 모두 재상고했다.

 그런데 두 번째 판단에 나선 대법원 1부는 뜻밖에 “변상금은 물릴 수 있으나 사용료를 물리는 건 부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판단 근거는 원래 행정재산이었던 문제의 공원이 주택 재건축 사업 시행인가가 나면서 일반재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행정재산에 부과하는 사용료는 안 되고 일반재산에 부과하는 변상금만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파기된 재상고심은 서울고법이 세 번째로 심리 중이다.

 유관 정부부처와 재건축 업계는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는 대법원 3부 판결을 근거로 “전국 323곳의 재건축조합이 총 1630억원에 달하는 공원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며 감사원에 조사를 요구했다. 서울시도 지난해 말 각 재건축조합에 공원사용료를 부과하는 현황을 파악하라며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가장 당혹스러운 건 서초구다. 구 관계자는 “1차 상고심 때 이런 판결이 나왔다면 채권소멸시효(5년)가 남아 있어 변상금을 부과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 7월로 시효가 끝나 지금은 사용료도, 변상금도 받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대법원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2011년에는 사용료 면제 여부가 쟁점이었고 이번엔 재산의 성격이 쟁점이었기 때문에 판결이 엇갈렸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실의 혼란은 감안하지 않은 채 형식논리에 빠진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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