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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달러 탓에 힘 빠진 미국 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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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이 ‘실적 침체(Earnings Recession)’에 빠질 조짐이다. 달러 강세 탓이다.

 미국에서는 8일(현지시간)부터 올 1분기 어닝시즌(실적 발표)이 시작된다. 원자재 기업인 알코어가 리드오프(첫 타자)다. 뉴욕 월가 분위기는 밝지 않다. 경영 정보 회사들이 이미 어닝 쇼크를 예고해놓았다. S&P 500 지수에 편입된 기업의 평균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작게는 3.1%에서 많게는 4.9% 줄어들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융위기 와중인 2009년 이후 6년 사이에 가장 나쁜 실적”이라고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강한 달러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컨센서스”라고 전했다. 미 달러 가치는 올 들어서만 9%(달러지수 기준) 정도 올랐다. 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본격적으로 올리기 시작하면 달러 값은 더 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요즘 미 대기업의 순이익 가운데 25% 정도는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다. 달러 값이 오를수록 순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1990년 이후 20여 년 간 데이터를 살펴보면 달러 값이 연간 25% 오르면 기업의 순이익은 10% 정도 줄었다.

미 컨설팅회사들은 올 1분기에 미 기업들의 매출이 250억 달러(약 27조5000억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순이익은 주당 7센트꼴로 감소할 전망이기도 하다. 기업별로는 장난감 기업 마텔,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온라인여행사이트 익스피디아 등의 실적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문제는 실적 악화가 올 1분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올 2분기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 넘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이렇게 되면 미 기업 실적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미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2분기 연속 실적 감소는 드문 일”이라며 "실적 침체라고 할 만하다”라고 전했다. ‘실적 침체’는 경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이면 ‘경기 침체’라고 보는 월가의 관행에서 따온 표현이다.

 다만, 국제유가 하락으로 미국인들의 씀씀이가 커지면 3분기 실적부터 다시 좋아질 전망이다. 그러더라도 올 1년 미 기업의 평균 실적은 지난해 절반도 안 될 것이라는 게 톰슨로이터 등의 예측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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