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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싱가포르 성장 비결은 출신·배경 안 따지는 능력주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1호 15면

김춘식 기자

-우선 싱가포르의 국부(國父)인 리콴유(李光耀) 초대총리에 대해 묻겠다. 그의 장례식이 지난주 거행됐다.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부패 청산과 실용주의다.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당시 가난한 도시국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리콴유의 리더십 덕분에 현재의 번영을 일궈낼 수 있다. 부패 근절은 지금도 싱가포르 통치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실용주의도 싱가포르 발전의 핵심 철학이다. 리콴유가 카지노 사업 허용을 반대했다가 결국 수용한 것도 실용주의적 국가운영 방침에 따른 것이다.”

입 웨이 키엣 신임 주한 싱가포르 대사

-싱가포르의 강력한 권위주의 통치 체제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은데.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다. 중국계·말레이시아계·인도계 주민 등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로 구성된 이민자 국가다. 따라서 독립 당시 민족 간 갈등과 충돌은 극심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치규범이 필요했다. 리콴유는 어떤 정치 시스템을 선택하느냐보다는 국가 발전을 위해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중점을 뒀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에는 출신과 배경에 관계없이 능력을 중시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가 자리를 잡았다. 나도 그 혜택을 본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가 주택과 교육비를 지원한 덕분에 무사히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위치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싱가포르 경제의 성장비결은.
“간략히 말해 싱가포르는 적절한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다. 60년대에는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임금 상승으로 이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후 자본집약적인 산업에 중점을 뒀다.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왔지만 글로벌 경제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로 인해 금융위기 때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현재는 기존의 성장을 토대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기반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바이오테크 분야도 그중 하나다. 이외에도 싱가포르 경제성장에는 안정적인 정치 체제도 한몫했다. 정치가 안정되면 10~15년이 필요한 장기적인 국가발전 계획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에게 신임장을 제출한 입 웨이 키엣 주한 싱가포르 대사(왼쪽). 오른쪽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과 싱가포르 양국이 수교 40주년을 맞았는데.
“한국은 8번째 무역 상대국으로 싱가포르엔 중요한 경제파트너다. 지금까지 대형 인프라 건설에 삼성과 쌍용건설 등 한국 업체가 많이 참여했다. 앞으로는 대기업 외에도 중소기업 간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양국의 경우 일자리의 상당수를 중소기업이 제공하고 있다. 협력이 강화된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양국은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창조경제’ ‘혁신경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도 새로운 협력 분야를 모색할 것이다. 또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9년이 지났다. 그동안 글로벌 경제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기존 FTA의 성과를 되새기고 협력을 더욱 증진하는 방안도 강구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지난해 12월 열린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 참석차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방한했다. 리 총리는 당시 서울교통정보센터(TOPIS)를 방문했다. 한국의 선진화된 대중교통 시스템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리 총리는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 버스 운행 방식 등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국토가 좁아 교통 체증이 심각한 싱가포르가 적극 도입해야 할 시스템이다. 한국의 전문가들을 싱가포르로 초빙해 많은 조언을 얻었다. 현재 싱가포르도 효율적인 교통량 분산을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종종 남북한의 비밀 접촉 장소로 활용되는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역할을 할 계획은 없나.
“솔직히 말해 지금껏 싱가포르 정부가 남북한의 비밀 접촉에 개입한 적은 없다. 아마도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와 대등하게 북한을 대하기 때문에 북한 측에서도 싱가포르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도 비자 없이 싱가포르에 입국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한 비밀 접촉의 장소로 선호되는 것 같다. 우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다. 북한이 유엔의 결의안을 준수하고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이를 통해 북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직접 나서서 중재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안보 측면에서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중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다. 싱가포르가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도 중국이다. 인구의 72%가 중국계이기에 역사적·문화적으로도 가깝다. 양국 지도자들도 친밀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미국과도 오랫동안 안보 파트너로 협력해왔다. 싱가포르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이 이익이 충돌할 수 있는 믈라카 해협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중점을 두는 것은 강대국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이 평화롭게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외교정책도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다.”

-싱가포르에서의 한류는 여전한가.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팥빙수’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열대지방에 위치한 싱가포르에 딱 맞는 식품이다. 한국 음식점도 300개를 넘어섰다. 현재 싱가포르 사람들은 한국산이라면 음식·패션·화장품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뭐든 좋아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단지 한국 드라마와 K팝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배운다고 한다. 싱가포르를 포함한 아세안의 인구는 6억4000만 명에 달한다.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한류가 앞으로도 아세안 시장 공략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입 웨이 키엣(46) 대사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국제정책학을 공부. 1993년 외교부에 들어가 그동안 중국·태국·말레이시아 등에서 외교관 생활을 함. 주한 대사로 임명 직전에는 동북아국장을 맡음.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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