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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정감있는 우리말, 아련한 슬픔 … '문장의 대가' 이태준의 동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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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몰라쟁이 엄마
이태준 글, 원유미 그림
보물창고, 80쪽, 9800원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내려가보는 일’. 동화가 주는 첫 번째 즐거움일 것이다. 아이는 궁금한 게 많다. “참새는 제 엄마를 어떻게 알아볼까?” “참새 할아버지에게도 수염이 있을까?” 엄마는 “몰-라”하고 답할 뿐이다.(‘몰라쟁이 엄마’) 또 다른 단편동화 ‘꽃장수’를 보자. 꽃·오이·호박 모두 꽃장수가 만들어 내는 줄 알았던 아이가 나온다. 엄마에게 캐묻고서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꽃에 물을 주고 볕도 쬐주는 하늘을 놀란 듯 올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을 상상하는 일이 즐겁다.

 그러나 마냥 즐겁지는 않다. 부모를 잃은 오누이는 친척에게 매 맞으며 자라고, 명절이 두렵다. 엄마 산소 앞에 배고파 쓰러져있다가 늑대에게 물려가는 여동생을 찾아 오라비는 산 속을 헤맨다.(‘슬픈 명일 추석’) 엄마를 기다리느라 전차 정류장에 선 아이는 추워서 코가 빨갛다. 동화가 끝날 때까지 엄마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엄마 마중’)

 아이의 천진난만함에서 한 장만 들추면 아련한 슬픔이 있는 동화집이다. ‘까마귀’ ‘밤길’ 등 단편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태준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었다. 누이동생과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며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동화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별다른 수식 없이도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문장은 이태준이 ‘단편 미학의 대가’로 불리는 까닭을 알게 해준다. 이태준은 1946년 월북해 ‘월북 작가’로 분류됐다. 동화 또한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읽을 수 있었다. 이런 동화가 얼마 동안 못 읽혔던 것은 아깝다. 또 아이들만 읽기에도 아깝다. 정감있는 우리말, 넘치는 상상력 때문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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