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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노동 개혁 실패는 치명적 재앙 … 정부가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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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동시장 개혁이 좌초 위기다.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 말까지 6개월간 노사정이 모여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논의해왔지만 결국 아무 성과 없이 협상 시한을 넘겼다. 노사정은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시간이 더 지난들 의미 있는 합의안이 나올 것 같지 않다. 합의안 마련에 성공하더라도 낮은 수준의 타결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6개월간 시간만 끌다가 빈손으로 끝냈다는 비난이 두려워 노사가 합의 시늉만 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노사정 협상 난항의 일차적 책임은 한국노총에 있다. 5대 쟁점인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저성과자 일반해고 요건 등에 대해 협상 시한인 지난달 31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노측 대표로 협상장에 나간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의 손발을 사실상 꽁꽁 묶어놓은 셈이다. 현상 유지와 기득권 지키기가 아니면 아무것도 타협하지 말라고 미리 선을 그었으니 협상 대표인들 무슨 수로 협의안 마련을 이뤄내겠나. 여기에 사측마저 현 상태 유지가 굳이 손해 볼 것 없다는 인식을 갖고 협상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니 애초 제대로 대화가 이뤄질 수도, 성과가 나올 수도 없었던 셈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정부와 정치권의 잘못도 크다. 국회는 정년 연장을 의무화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 같은 보완장치 마련은 나 몰라라 했다. 전략적으로도 미숙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노동 개혁 핵심 과제로 꼽으면서 먼저 약속했다. 협상장에서 내줘야 할 것을 미리 주는 바람에 노동계를 설득할 패가 없어진 것이다. 이미 원하는 것을 다 얻은 노동계가 뭐가 아쉬워 양보하겠는가.

 사회적 대화는 경제·사회 위기 극복을 위해 국회가 아닌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 최대 공약수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모범 사례로 삼았다. 집단 지성의 힘으로 이뤄낸 합의야말로 개혁 성공의 보증수표와 같다. 실제 두 나라의 개혁은 노사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과 양보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사정 협상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아직 사회적 대화를 통한 개혁을 이뤄낼 역량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급기야 노사정 합의를 기다려 임금 협상을 미뤘던 기업들이 개별 협상에 나서고 있는 판국이다. 현대자동차는 어제 수당 간소화, 성과 반영을 골자로 한 새 임금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코앞에 닥친 정년연장과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더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 개혁 실패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 재앙이 될 수 있다. 특히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 구조와 고용 유연성 제고 문제는 이번에 꼭 해결해야 한다. 더 미뤘다간 비정규직과 일자리를 못 찾는 청년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노사의 극적인 ‘통 큰 합의’가 최선이지만 노사 합의가 안 되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안을 내놓고 최종 시한을 정하되 끝내 타협이 안 되면 정부안을 그대로 국회로 가져가는 차선책도 생각해 봐야 한다. 유럽의 사회적 대화 성공에는 노사의 양보·결단 외에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