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집권당 맞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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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지 다섯달이 지난 지금, 민주당은 집권여당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특히 盧대통령이 지난 21일 "대통령직을 못 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토로하면서 "집권당은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는 비난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盧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데에는 북핵 등 외부적 요인과 청와대.내각의 미숙함 탓도 있지만 여당의 무기력.무능력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당정(黨政)분리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데다 당내 신.구주류 갈등에 발목이 잡혀 현재로선 정상적인 역할과 기능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민감한 현안엔 나 몰라라=민주당은 올 들어 대북 송금 특검법, 이라크 파병안, 국정원장 임명, 한.미 정상회담 등 찬반 논란이 거셌던 민감한 문제에 대해 단 한번도 통일된 당론을 내놓지 못했다.

또 물류대란, 경기회복 대책, 전교조.공무원노조 문제 등 민생 관련 현안에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비난여론이 일자 그때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곤 했다.

정대철(鄭大哲)대표 등 당 지도부가 23일 노사정위를 전격 방문하고 이번주 들어 잇따라 당정협의를 한 것도 여론을 의식한 구색 갖추기 차원이란 지적이다.

추경예산 편성, 분식회계 사면 등 어쩌다 목소리를 낼 때조차도 당직자들 간에 주장이 엇갈려 내부 혼선을 빚기 일쑤였다.

여기에는 鄭대표.김원기(金元基)고문 등 신주류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도 한몫했다. 당의 구심점이 없다 보니 의원들이 제각기 자기 목소리만 내게 됐고, 그런 상황에서 특검법 재협상도 유야무야되는 등 소수 여당의 한계만 실감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당이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趙舜衡고문)는 절망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밥그릇 싸움에 민생은 뒷전=대선 직후부터 다섯달째 당 개혁안이니 신당이니 하며 신.구주류가 치열하게 다투다 보니 민생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더욱이 신주류의 비공식 신당추진 모임과 이에 맞서는 구주류의 구당 모임이 결성되면서 현 지도부는 사실상 '식물 지도부'가 돼버렸다. 민생 현안을 다뤄야 할 매일 오전 당직자 회의도 거르기 일쑤다.

문제는 당 기능이 쉽사리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중진 의원은 "신당의 가닥이 잡히고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까지는 이런 공황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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