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를 쓰는 마음으로 디자인" … 84세 멘디니 유쾌한 파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자신이 디자인한 원형 스탠드 ‘아물레또’ 뒤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큭큭’ 웃으며 농담을 즐기는 ‘백발 소년’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포토]

이 키 작은 사내는 겁이 많았다. 뭐든 늦었다. 28세에 대학을 졸업했고, 58세에 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84세인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다. 그는 기능이 디자인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줬다. 골동품 의자를 사다가 색점을 찍어 내놓은 ‘프루스트 의자’(1978), 와인 오프너 ‘안나G’(1994)가 대표적이다. 작은 키 때문이었을까, 크기에도 반발했다. 사람 키만큼 확대한 커피잔을 얹은 수납장 등 ‘남성을 위한 가구’(1996) 시리즈는 크기 하나 바꿔서 기존의 기능을 무화시켰다. 기능주의 디자인에 반기를 들며 개인의 이야기와 역사를 디자인에 담았다.

 멘디니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왔다. 10월 열 회고전을 위해서다. 1931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멘디니는 59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대학 건축학부를 졸업했다. 건축·디자인 전문지 ‘카사벨라’ ‘모도’ ‘도무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58세인 89년 동생과 함께 밀라노에 ‘아틀리에 멘디니’를 열어 디자이너로 새 길을 걸었다. 카르티에·에르메스·스와로브스키·알레시 등과 협업했다.

‘거인의 두상’(Tete Geant, 2002). [사진 아틀리에 멘디니]

 - 옛 이야기부터 하자. 어떻게 디자이너가 됐나. 그것도 58세에.

 “대학을 늦게 졸업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이 길이 맞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거 맞는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년 말 결심했다. ‘올해 졸업하지 말자’ ‘올해 졸업하지 말자.’ 전공은 건축이었지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도 좋았다. 졸업 후 잡지에서 주로 일했다. 디자인 비평가처럼 살다 보니 작업을 하고 싶어졌다.”

 - 남의 디자인을 비평하다가 뒤늦게 창작하기가 겁나진 않았나.

 “나는 항상 두렵다. 이 전시회를 하는 것도 두렵다. 그러나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나는 전쟁도 겪어봤다. 집 근처 광장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갔고,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폭격기를 피해 피난도 갔다. 열두 살 때 일이다. 그때부터 내 인생엔 늘 두려움이 따라다닌 게 아닐까.”

그의 대표작인 와인 오프너 ‘안나G’(1994).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포토]

 - 많은 젊은이들이 구직과 실직으로 고생한다. 반면 당신은 58세에 새로 일을 시작하고, 84세인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건축가 장 누벨도 파도 타듯 한다더라. 직업의 안정성은 점점 낮아진다.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꼭 그 일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뭔가 해놓고 나면 만족하지 못해서 또 하고, 더 하고, 계속 한다. 항상 더 잘하려고 노력해서 계속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인생의 위기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30대), 이혼했을 때(50대) 등 가족을 잃을 때 가장 힘들었다. 요즘 들어서는 친구를 잃었을 때가 그렇다. 어려움은 일보다는 사람에서 촉발됐다. 일은 내게 굉장히 아름답고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어렵다. 맞다, 일이 쉬운 건 아니다. 내가 지금 늙어서 힘들다는 게 아니라 젊을 때도 그랬다.”

 - 멘디니에게 디자인이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기자들이 꼭 이 질문을 한다. 30년간 그랬다. 한 번도 정확한 대답을 해 본 적이 없다(웃음). 디자인에는 다양한 분야와 쓸모가 있다. ‘디자인은 ○○다’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다만 내 디자인은 감성적이다. 느낌이 있고,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중시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그걸 사용하는 이에게 적합하며 아름답고, 역사와 스토리도 갖춘 것이다.”

 - DDP에서의 전시 계획은.

 “한마디로 판타스틱한 공간이다. 그런데 비대칭에 곡면이 많아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내가 했던 그 어떤 전시보다 유익하고 재미있어야 할 텐데, 안 그러면 자하 하디드가 나한테 한소리 할 것 같다. 자하에게 칭찬받으려면 내 작품을 모조리 하얗게 칠해야 하나(웃음). 이 특별한 곳에서 크고 작은 것, 예술적인 것과 산업디자인, 역사적인 것과 요즘의 것 등 내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겠다.”

글=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알레산드로 멘디니=디자인의 기능성·상업성에 반기를 들어, 새로 만들지 말고 기존의 상품을 재활용하자는 취지로 ‘리디자인(Re-Design)’을 주창했다. 골동품을 사다가 색점을 찍어 내놓은 ‘프루스트 의자’가 대표적이다. 안나G, 네덜란드 그로닝거 미술관, 히로시마 파라다이스 탑 , 독일 하노버 버스 정류장 등이 그의 작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