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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점자·스펙 NO ! 하버드도 삼성도 인성에 밑줄 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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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한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거버먼트 서밋(Government Summit)’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동 지역 리더 3000여 명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기조 연사로 나선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클라우스 슈반 세계경제포럼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황 부총리는 “한국이 그동안 지식 위주 경쟁으로 세계적인 교육성과를 이뤘지만 학생들의 인성과 도덕성·행복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성교육을 강화해 학생들이 신의·상호 존중·협동 정신을 배워 진정한 세계 시민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황우여 부총리 발언은 인성교육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설명해준다. 지난 1월 교육부 차관 및 실·국장과 출입기자 40여 명이 함께 한 신년 오찬회에서 신익현 정책기획관도 “올해 교육부의 최우선 정책은 인성교육이다. 인성이 행복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같은 달 교육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학 입시에서 수험생들의 인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올해부터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등의 재정사업에서 대학 입시에 인성교육을 반영하느냐 여부를 중요한 평가 요소로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올 5월 교육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때 인성교육의 비중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경쟁과 자율, 국제화 등이 핵심 기치였던 5·31 교육개혁 20주년을 맞아 교육부가 새로운 교육철학을 제시한다. 황 부총리는 그 동안 수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그 핵심을 인성교육에 두겠다고 밝혔다.

또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이 한국에서 열리는데 우리가 제시하는 어젠다가 ‘세계시민교육’이다. 넓은 범위에서 시민교육도 인성교육의 한 영역인 것을 감안하면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가고 있다.

이처럼 인성교육이 정책적으로 중요시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연말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이 올 7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당시 국회 본회의에선 출석의원 199명의 만장일치로 법을 통과시켰다. 정의화 의장은 “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들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선진 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법이 시행되면 정부는 5년에 한 번씩 인성교육종합계획을 세우고 지방자치단체·교육청과 개별 학교는 1년마다 인성교육 시행계획을 세워 운영해야 한다.

①지난해 12월 학생과 부모 등이 국회 ‘인성캠프’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②경희대학교 후마
니타스 칼리지의 예술교과인 ‘합창의 재발견’ 수업 장면. [사진 국회인성교육실천포럼, 경희대]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법으로 제정할만큼 인성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는 그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인성 현실에 위기에 이르렀다는 진단 때문이다. 2013년 본지와 경희대가 공동 개발한 인성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2 학생 중 절반 정도(45.6%)가 인성이 미흡한 수준이었다. 인성의 세 영역(도덕성·사회성·정서)을 정의·정직·배려 등 10개 지표로 세분화 해 측정했는데 한 개 지표만 양호했다. 연구 책임자였던 지은림 경희대 교육대학원장은 “학생들의 인성실태는 매우 위태로웠다. 그 책임은 인성교육을 하지 않은 가정과 학교, 나아가 이를 묵과한 전 사회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에서 인성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7년 4개국 초등생 2349명을 조사한 결과 ‘교실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배우고 실천한다’에 ‘그렇다’고 답한 한국 학생은 18.4%에 불과했다. 프랑스(63%)·영국(54.3%)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교실에서 타인을 이해·존중하는 걸 배우고 실천한다’고 응답한 한국 학생(15.9%)은 프랑스·영국 학생(60%)의 4분의 1밖에 안 됐고 일본 학생(28.7%)과도 차이가 컸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청소년 행복지수는 74점으로 조사 대상국 23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국회와 정부가 입법과 정책 입안으로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것과 별개로 기업에서도 인성을 전보다 더욱 중요시 여기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역량과 인성으로 나눠 면접 평가를 한다. 인성 면접은 3명의 임원이 30~40분 동안 심층 질문을 한다.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인생관과 철학이 드러나는 구체적 경험을 얘기하도록 한다. 삼성의 인사 담당자는 “신입사원에겐 회사 생활 태도, 남과 협력하는 자세, 배우려는 의지 등 인성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에선 이미 학생 선발 때 인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조우석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입학사정위원은 “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만점을 받고도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하버드는 인성과 리더십이 뛰어난 ‘인성 엘리트’를 뽑는다”고 말했다.

국내서도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경희대는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해 인문학 중심의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모든 학생들은 교양필수인 ‘시민교육’(3학점) 수업을 통해 존중과 배려, 협동 등 인성의 다양한 덕목들을 토론과 실습 중심 수업으로 체화시킨다. 서울여대는 1학년 땐 3주, 2학년 땐 2주씩 모든 학생들이 인성교육관에 합숙하며 공동체 정신과 예의를 배우도록 한다. 3학년 땐 팀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리더십과 소통 능력을 체화한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인성교육진흥법=전국 1만2000개 초·중·고교의 인성교육을 의무화한 법. 올 7월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5년마다 인성교육종합계획을 수립해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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