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의 근로자는 잊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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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31면

올 하반기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맞는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와 남은 임기에 대한 조언이 심심찮게 언론을 통해 전해진다. 그의 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는 이렇다.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국에 혁신센터를 열었다. 또 부동산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일련의 조치를 내놓았으며, 시장이 약간의 활력을 얻는 모습이다.

반면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창조경제를 통해 얻은 효과가 무엇이며, 과연 서민들에게 어떤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줬는지 의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는 것도 정부 정책에 따른 단기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한국 경제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나는 그 중 해외건설과 임금 인상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전통적으로 기업 성장과 근로자의 역할이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해외건설 부문은 저유가와 중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크게 위축돼 있다. 2012년 이래 한국의 건설업체들의 수주 규모와 영업이익은 하락하고 있다. 이는 값싼 노동력을 보유한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도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의 폭락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동 건설시장은 한국의 전체 해외건설 수주에서 절반을 차지했다. 따라서 중동에서의 부진은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최근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카타르·사우디 아라비아 등 4개국을 순방했다. 이는 중동시장의 변화를 간파한 적절한 방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디 국왕과 정상회담을 하고 20억 달러 상당의 중소형 원전 수출과 관련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박 대통령의 방문은 기존의 양국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국내 언론에선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와 재계 대표단이 지난 13일부터 사흘간 이집트에서 열린 ‘이집트 경제개발 회의’에 참석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집트의 경제성장률이 3.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2.2%에 비하면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대표단의 방문도 신시장 개척을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중동에서의 한국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대한 평가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이들이 그동안 보여준 근면·성실과 기술력 때문일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현재 국내 진행되고 있는 임금인상에 대한 논쟁은 다소 당황스럽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리더십에도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이달 초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충분한 임금 인상 없이는 내수시장이 살아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도적으로 공무원들의 임금 인상을 거론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재계와 임금 인상을 논의했지만 결국 공감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재계가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의 성공 요인 중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 근로자들의 헌신이었다. 해외에서의 첫 성공사례는 태국에서였다. 1965년 현대건설이 건설한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길이 98㎞)가 해외건설 1호로 성공의 시발점이었다. 당시 한국인 근로자들은 열대 기후와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성실히 일했다. 최근 나폰 시리차나 나라티왓 주지사는 “한국인들은 근면함을 바탕으로 불과 25개월 만에 고속도로를 완성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태국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한 지 50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당시의 근로자들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성공 과실의 재분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버틸 피터슨 보스턴글로브 등 미국의 주요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집트 미국상공회의소가 발간하는 ‘월간 비즈니스’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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