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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다시 가본 안산 원곡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순찰차의 경광등 불빛이 낯선 중국어 간판을 비춘다. 토요일인 지난 21일 오후 7시30분 사람들은 저마다 담배 한 개피 씩을 물고 걷고 있다. 한국말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경기도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국내에서 외국인 거주자(동 단위)가 가장 많은 곳이다. 안산 원곡본동 외국인 거주자는 2만2600명. 원곡본동 전체 주민 5만6000명의 40.4%다. 미등록체류자 등을 합하면 외국인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곡다문화파출소는 거리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일대 약 55만㎥를 책임지는 치안의 최일선이다. 3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본지 2012년 3월 28일자 2면 보도> 파출소 야간 근무조장을 맡은 임광빈(48) 경위가 말한다.

“안산역에서 걸어오는데 그때부터 술냄새가 풍기더라고요. 주말엔 아무래도 사건이 많기 때문에 경찰서 기동대원(의경) 10명도 이곳에 머무릅니다.”

파출소 경찰관들이 복장을 갖추고 순찰 채비를 한다. 2인 1조로 3개조 씩 돌아가며 순찰을 돈다. 38구경 권총과 테이저건으로 무장하고 방검조끼도 착용한다. 명요환(39) 경장과 권현주(26ㆍ여) 순경이 순찰차 41호에 올랐다. 오후 8시 15분, 차량 네비게이션에 사건 정보가 뜬다.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고용해 불법 영업을 한다는 신고 접수.’

명 경장이 지하노래방 앞문을, 권 순경이 뒷문을 맡기로 했다. 신호와 함께 재빠르게 지하 계단을 내려가보지만 ‘철컥’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힌다.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명 경장이 분통을 터뜨린다.

“업소에서 단속에 대비해 건물 안팎에 폐쇄회로TV(CCTV)와 감지기를 설치해둬요. 심한 곳은 건물 주변으로 CCTV 30개를 설치한 곳도 있어요.”

오후 11시20분 “토요일인데 이상하게 좀 조용하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건정보가 뜬다. ‘새마을금고 사거리 근처 조선족끼리 싸움. 1명은 칼을 소지하고 있다고 함’.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거리를 울린다. 현장 도착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이미 순찰차 42호, 43호가 와 있다. 여러 사람의 고성이 메아리치는 골목길은 아수라장이다. “칼 어딨냐고!”(경찰) “칼을 가방에 담아서 버렸어요.”(목격자), “칼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피의자)

일단 모두 파출소로 연행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중국동포 정모씨가 다방 안에서 시비가 붙은 뒤 근처를 지나가던 서모씨를 자신과 다툰 사람으로 오인하고 폭행한 것이었다. 관심은 흉기 소지 여부였다. “칼 갖고 있었던 거 어떻게 했냐”는 명 경장 추궁에 정씨는 “버렸다. 칼은 다방 주방에서 몰래 가지고 나왔다”고 실토했다.

오전 1시20분. 이번엔 CCTV 통합 관제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남성 2명이 인형뽑기 자판기에서 뭔가를 훔치고 있다’는 내용이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팀이 이들을 검거한 뒤였다. 전자담배를 훔치기 위해 철사줄을 이용해 자판기를 털던 2인조 절도범이었다.

오전 2시40분. ‘노래방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번엔 이준(38) 경사와 이정현(28) 경장이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순찰차를 노래방 근처에 세워두고 2층 노래방 철문을 두드렸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마침 한 외국인이 양손에 만원짜리 지폐 수십장을 들고 문을 두드리자 그제서야 문이 열렸다.

주인이 눈치를 챈 듯 “방이 없다”며 두 경찰관을 쫓으려 했지만 이 경사도 “놀러왔는데 왜 그러냐”며 막무가내다. 들어가보니 외국인 여성 도우미들이 보였다. “지금 들어오라”는 이 경사의 무전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관 5명이 들이닥쳤다. 업주는 “다 인정할게요”라며 체념한 얼굴이다. 하지만 실제 성매매 현장은 적발하지 못해 불법 도우미 고용 혐의만 적용됐다.

원곡동의 외국인 범죄는 2012년(2061건)에서 2014년(2531건)으로 증가했다. 안산 단원경찰서 임종수 외사계장은 “범죄 조직화가 우려된다는 첩보가 있었지만 최근엔 소강 상태”라고 말했다. 22일 오전 파출소 앞에 자욱하게 낀 새벽안개를 바라보며 한 경찰관이 말했다.
“방검조끼가 아직 차량당 2개씩밖에 지급이 안 돼요. 그래도 한국 속의 세계, 다문화 거리를 지킨다는 보람에 순찰을 나섭니다."

안산=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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