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관·김환기·이응노·이우환 … 한국 현대미술 산실 45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서울 반도호텔 아케이드의 반도화랑 직원 박명자(당시 27세)는 1970년 4월 인사동길 2층짜리 치과 건물을 임대해 화랑을 차렸다. 그림도 파느냐며 이상히 여기던 때였다. 현대화랑은 5년 뒤 경복궁 옆으로 이전했다. 95년엔 인근 앙드레김 의상실을 매입해 화랑 신관으로 확장했다.

 72년 남관(1911∼90) 개인전을 시작으로 74년 이성자(1918∼2009)·서세옥(86), 75년 유영국(1916∼2002)·이응노(1904∼89), 79년 ‘한국현대미술: 4인의 방법(김창열·박서보·윤형근·이우환)’ 등 추상 회화전을 꾸준히 열었다. 추상 미술 전시에 “벽지 걸어놓았냐” “이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는 냉랭한 반응이 나오던 시절의 이야기다. 국내 화랑의 효시 갤러리현대가 걸어온 45년이 곧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가 됐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가 25일 ‘한국의 추상 회화-갤러리현대 45주년 기념전’를 열었다. 한국 근현대 추상미술을 이끈 18명의 그림 60여 점을 걸었다.

 도쿄에 유학해 서양화를 배우고 전쟁을 겪은 우리 추상미술 1세대 김환기(1913∼74)·류경채(1920~95), 문자 추상의 남관·이응노, 단색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재일교포 곽인식(1919∼88) 등이 본관에 자리 잡았다. 신관은 권영우(1926∼2013)·박서보(84)·정상화(83)·하종현(80)·이우환(79)·정창섭(1927∼2011) 등 단색화가들의 작품으로 꾸몄다. 모두 지난 45년간 이 화랑을 거쳐간 작품들이다. 참여 작가 18명 중 10명은 이미 세상을 떴다. 70년대 단색화가 재조명을 받는 지금, 어떻게 해서 한국 현대미술에 단색화라는 움직임이 나타났는지 그 이전의 역사부터 훑는 전시다. 미술사가 송미숙씨는 “서구 사조를 뒤따라가기 바빴던 우리 미술계는 70년대 경제 성장과 더불어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 속에 단색화 운동을 벌이게 됐다”며 “바로 이 시기 개관해 45년간 한국 현대미술과 동행해 온 갤러리현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전시”라고 말했다.

 갤러리현대는 73년 “작가와 대중의 중개자 역할”을 표방하며 계간미술지 ‘화랑’을 창간, 후에 ‘현대미술’로 이름을 바꾸며 93년까지 총 76권을 발행했다. 87년 한국 화랑 중 처음으로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95년 파리 피악(FIAC), 96년부터 아트 바젤에 윤형근·서세옥 등을 소개하며 해외 아트페어 시대를 열었다. 2012년 독일 카셀 도쿠멘타엔 이 화랑 소속 문경원·전준호가 한국 작가로는 20년 만에 참가했다. 이들은 올 5월 열리는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됐다. 홍익대 정연심 교수는 “최근 국내외에서 재조명되는 한국의 추상예술과 단색화는 갤러리현대 전시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했다. 전시는 다음달 22일까지 이어진다. 02-2287-3500.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