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젠 문재인 대표의 통 큰 결단만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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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무원연금 개혁의 본 게임이 시작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25일 개혁 안을 공개했고 국민대타협기구가 재정추계모형에 합의했다. 대타협기구와 연금개혁특위가 가동된 지 85일 만에 나온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동안 새정치연합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을 내지 않았는데 공식 안을 냄으로써 합의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본다. 대타협기구 활동 시한(28일)이 사흘밖에 안 남았지만 그동안 논의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시한 내에 성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안은 매우 실망스럽다. 알맹이가 없어서다. 2009년 개혁처럼 보험료를 좀 더 내고 연금을 조금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변수는 제시하지 않았다. 보험료는 ‘7%+α(알파)’로, 연금지급률은 ‘1.9%-β(베타)’로, 재정절감 효과는 ‘266조+γ(감마)’라고 표기했다. 핵심 수치를 공개하지 않은 채 재정절감 효과는 새누리당 안보다 높다고 주장했다. 핵심이 빠져 ‘팥 없는 팥빵’과 다름 없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살짝 공개된 초안을 그대로 갖다 놨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핵심 목표는 재정안정이다. 적자 보전에 하루 100억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를 해결하려면 이번 개혁에서 수지 균형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 새정치연합 안대로 퇴직금을 현행(최대 민간의 39%)처럼 유지하려면 연금지급률이 1.6%(현재 1.9%) 선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런 목표 못지않게 중요한 게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형평성이다. 새정치연합 안대로 하면 ‘우등 공무원연금-열등 국민연금’ 이층 구조는 달라지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반값 연금이라고 폄하하면서 공무원은 더 나은 연금을 받아도 좋다는 말인가. 신규 공무원부터 국민연금에 편입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일본·미국 등의 선진국도 통합 운영으로 바꾼다.

  새정치연합 안이 미흡하긴 하지만 여야가 머리를 맞대면 접점을 찾을 대목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재정 절감 효과, 하위직 공무원을 위해 소득재분배 기능을 넣는 점 등은 양측 안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연금 수령자의 연금을 5년 동결하겠다는 점도 공통 분모가 될 수 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해 11월 확대간부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 “매우 용기 있고 잘하는 일”이라며 “시간이 걸려도 박근혜 정부가 연금제도 개혁을 성공적으로 하면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지난주 청와대 회동에서 “합의한 날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문 대표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조언대로 지금은 ‘통 큰 협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게 대권주자답다. 4·29 재·보궐 선거를 염두에 둔 공무원 눈치보기는 더 이상은 안 된다. 공무원과 가족 500만 명만 바라볼 게 아니다. 국민이 화나면 정말 무섭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