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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 <4> 의문의 구조 요청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임수연

아지트에 도착한 수리는 먼저 무선전신기로 향했다. 뚜뚜뚜.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사비는 눈이 똥그래졌다. 그러나 마루에겐 뚜뚜뚜 소리가 음식이 ‘뚜뚜뚜 날 먹어, 먹어’ 하는 소리로 들렸다.

“음식이 쏟아진다는 뚜뚜뚜 소식이지? 음식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누가 문자를 발명했느냐고? 그냥 사냥하고 채집하면서 살면 공부할 필요도 없을 텐데. 괜히 문자를 발명해서…. 그래 내가 맛있게 먹어줄게. 뚜뚜뚜.”

“앗! 이건 모스 부호가 아니야.”

수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모스 부호만 주고받을 수 있는 무선전신기인데 모스 부호가 아니라니? 말도 안 돼. 도대체 누가 보내는 걸까?”

사비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신호가 폭주하고 있어. 그야말로 활화산의 용암처럼 쏟아내고 있다고!”

계속해서 오리온에 울리는 신호

아지트에서 아이들은 전 세계 무선통신 동호인들과 불가사의한 현상들을 쫓고 있었다. 과학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비와 마루 그리고 수리는 무선통신 동호인들을 불가사의한 현상을 잡는 사냥꾼이라는 의미로 ‘헌터(the hunter)’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지트는 시간과 공간의 중간계라는 의미를 담아 오리온이라고 불렀다.

“아~, 배고파.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저렇게 계속해서 뚜뚜뚜 토해내는 거야?”

마루는 계속 투덜투덜댔다.

“그 흔한 통조림 한 개도 없네. 누가 다 먹어치운 거야? 여기 있던 비상식량 말이야. 아, 미치겠네. 치킨·피자·닭 강정·떡볶이·순대·햄버거·스시·등갈비…. 안 되겠다.”

해롱해롱 중얼거리던 마루가 불쑥 형광펜을 찾아 들었다. 그러더니 종이에 치킨·피자·떡볶이·순대 등을 그리고 쭉 찢어서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사비는 인상을 찌푸렸고 부러 헛구역질까지 했다.

“안 돼! 마루야, 인간의 품위는 지켜야지.”

“품위? 인류는 어차피 품위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고. 수리 네가 말했잖아? 치열한 생존경쟁? 그래서 자이언트가 되고 호빗이 되고. 아, 그랬다. 아프리카에서 탈출한 이유가 기후 변화로 인해 먹을거리가 없어서라고. 그것 봐, 나도 인류의 기원과 동일 선상에 놓인 지극히 일반적인 행위를 하는 거라고. 쳇!”

그때였다. 뚝뚝뚝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비는 화들짝 놀랐다.

“골리샘?”

“설마 골리?”

수리도 잠시 어질 했다.

“골리샘이었으면 벌써 문은 박살 났어. 미국 해군 특수 부대 네이비실 클래스니까.”

그런데 노크 소리는 저음으로 시작해서 점점 고음으로 올라가는 일정한 스케일(scale)이 있었다.

“노크 소리가 아니라 꼭 어떤 신호 같아.”

고개를 갸웃하는 수리에게 신호가 맞다며 사비가 무선전신기를 가리켰다. 무선전신기는 이제 뚝뚝뚝 저음에서 뚜뚜뚜 고음으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셜록 홈즈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장면 속에 들어온 기분마저 들었다.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야.”

수리는 이 미스터리한 신호음을 해석하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특히 조바꿈이 되는, 아주 전문적인 멜로디야.”

사비는 불안한 듯 팔짱을 끼고 무선전신기 앞을 왔다 갔다 했다.

“그래. 분명히 특정한 누군가가 특정한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야. 그런데 문제는 신호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거야. 아, 나는 긍정의 호모 사피엔스. 힘을 내자.”

수리는 오른팔을 들어 아래위로 힘차게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소리쳤다.

“아, 궁금해 죽겠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아, 뭐지? 분명히 들어 봤는데….”

이어지는 뚝뚝뚝 소리에 마루가 다시 종이에 그린 음식을 찢어먹을 듯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문 열어봐. 골리샘은 아닌가 봐. 이런 인내심을 가진 공룡은 없으니까.”

“아니야. 노크 소리가 아니라 신호 소리라고.”

“이번엔 노크 소리야!.”

사비와 마루가 다투는 사이 수리가 귀를 쫑긋했다.

“조용! 이번 소리는 조금 다른데? 강도와 빈도가 증가하고 있어. 분명히 문 앞의 누군가는 몹시 불안한 심리 상태를 내포하고 있고 곧 폭발할 거야. 폭발 가능성을 수치화 하자면 99.8%. 그리고 지금 10시 30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 앞의 누군가는….”

골리샘의 충격적인 등장

그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박살 났다. 조각조각 흩어진 문 사이로 골리샘이 보였다. 수리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하지만 이내, 웃음이 튀어나왔다. 골리샘의 화장 때문이었다. 일본 민화에서나 볼 수 있을, 온통 새하얗게 얼굴을 칠한 가부키(일본 전통 연극) 화장이었다. 화장 탓에 골리샘은 사람도, 평소 인상 같은 공룡도 아닌 제3의 생명체처럼 보였다.

“준비는 끝났단다.”

골리 선생님은 웬일인지 어울리지 않는 수줍음과 청순함으로 무장하고 서 있었다. 수리는 눈앞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미리 구상하고 시뮬레이팅을 해놓았기 때문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선생님. 지금에서 옆집에 사는 강아지들이 파티를 하고 있어요. 왜, 베로 선생님 어머니의 고양이와 친하게 지내는 그 강아지요. 그래서 오늘은 사람의 방문은 받지 않는다네요. 강아지들의 자발적이고 학구적인 파티를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죠.”

수리는 능청을 떨며 눈을 찡긋거렸다.

“어머, 난 내가 파티 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파티를 보는 걸 더 좋아해. 어서 가자 수리야.”

골리 선생님은 육중한 몸통을 돌리며 서둘렀다.

“어느 쪽이지? 하얀 집? 빨간 집? 노란 집?”

예상과 다른 골리 선생님의 적극적인 태도에 수리는 허둥댔다.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그때, 사비가 수리를 급히 불렀다.

“수리야. 이것 봐.”

수리는 그 핑계로 사비 쪽으로 달려갔다.

“내가 신호를 정리했어, 봐봐. 그림 같지 않아?”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할 틈이 없었다. 골리 선생님은 수리와 사비, 마루를 자신의 기다란 팔에 한꺼번에 쓸어 담아 가두고 꼼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무슨 촉이 왔는지, 곧장 노란 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 거기는 안 돼요. 강아지들이 파티를 하고 있어요. ‘골리샘의 안부를 묻는 아이들’이란 주제로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다고요.”

“난 심각하게 지적인 사람이야. 토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마.”

수리는 진짜 절박했다. 골리샘이 빈 집을 본다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 뻔했다.

“사람은 못 들어가요.”

“수리야. 난 사람이 아니야…. 어쩌면. 하하하”

골리 선생님은 아이들을 끌어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수리와 사비, 마루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드디어 노란 집에 당도했다.

“조용히요. 조용히 들어가셔….”

사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골리 선생님은 그 두툼한 발로 노란 집의 노란 문을 뻥 찼다. 문은 간단하게 나가떨어졌다. 눈앞의 광경에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수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침을 툭 떨어트렸다. 놀랍게도 노란 집은 빈 집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수리가 얘기한 강아지들이 있을 리 없었다.

“강아지들은? 파티 하는 강아지들은?”

골리 선생님은 침착함을 잃고 허둥지둥대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입에서 침이 파팍 튀었다.

“베로샘은?”

물론 베로샘도 있을 리 없었다.

“옆집 아줌마는?”

당연히 있을 리 없었다.

“있는 게 뭐야?”

골리 선생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있는 게 있어요.”

수리가 소리쳤다. 집 안에는 조금 전, 아지트 오리온에서 들었던 신호를 형상화한 듯한 이상한 기호들로 빽빽히 채워진 종이가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그림 같기도 문자 같기도 암호 같기도 한, 설명하기 힘든 문자 체계였다. 잔뜩 골이 났던 골리샘은 펄럭이는 종이를 바라보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환하게 웃으며 감격스러워 했다. 심지어 눈물마저 글썽였다.

“베로샘이 날 위해서… 이런 이벤트를 준비하셨구나. 기다려요. 베로샘, 베로샘….”

극적인 대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골리샘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펄럭이는 종이 깃발을 자세히 보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종이 위에 새겨진 이상한 기호들이 일사불란하게 도열하더니 수리 앞에 공손히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인사를 끝냈다는 듯, 스스로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다시 위로. 기호들은 자리를 옮겨갔다.

“휴, 정신없어.”

“뭐지? 너무 복잡해. 핑핑 돌아.”

“난 배고파.”

수리와 사비, 마루의 말이 서로 뒤섞이더니 어디선가 사람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복한다, 반복한다. 4월 5일 04시 45분. 다시 반복하겠다. 1967년 6월 5일 요나구니 근처 바다에 추….’

아이들은 귀신에 홀린 듯, 어리둥절했다.

“무…슨 소리인지 들었어?”

사비가 적막을 깨고 물었다.

“무슨 구조 신호 같았는데, 자세히 못 들었어.”

마루가 대답을 마치자 다시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반복한다, 반복한다. 4월 5일 04시 45분. 다시 반복하겠다. 1967년 6월 5일 요나구니 근처 바다에 추락했다. 구조 바란다. 제발 구조 바란다. 나는, 나는….’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가 분명했다. 하지만 누가, 왜 구조 신호를 보냈는지 아이들은 알 수 없었다.

레무리아 나무로 만든 태블릿

탐험가 라파 누이(Rapa Nui)는 귀가 기다랗게 늘어진 원주민들에게 그들의 땅에서 일곱 발자국 떨어진 아름답고 작은 섬의 깊은 우물 안에 ‘거인들의 사라진 노래’를 묻었다고 들었다. 깊은 우물은 레무리아 나무로 겹겹이 쌓아놓았고 누구도 알아볼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날 누이는 『깊은 우물에 묻어둔 노래』라는 레무리아 나무로 만든 오래된 태블릿(나무·돌·금속 등에 글자를 새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태블릿에 새겨진 그림이 인더스(Indus)의 인장에 새겨진 그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아챘고 『깊은 우물에 묻어두었지만 잠시 사라진 노래』라는 또 다른 레무리아 나무로 만든 태블릿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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