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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이야, 값 내린 샤넬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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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10일 프랑스 파리 패션 위크에서 열린 샤넬의 2015~2016년 가을·겨울 패션쇼. 모델들이 다가올 시즌을 선도할 의상과 핸드백을 선보이고 있다. [파리 AP=뉴시스]

18일 서울의 한 백화점 샤넬 매장. 직원들은 고객 문의 전화를 받느라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샤넬이 핸드백 가격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져서다. 샤넬은 17일부터 클래식과 보이샤넬, 2.55 등 대표적인 핸드백 가격을 11~23% 인하했다. 보이샤넬 미디엄 사이즈의 경우 681만원에서 524만원으로 157만원(23.1%) 낮췄다. 이날 면세점도 가격을 내렸다.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의 하나인 샤넬의 가격 인하는 이례적이다. 한·유럽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후 관세 인하분을 일부 반영해 5% 가격 인하를 한 것 외에는 최근 10년간 꾸준히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샤넬이 가격을 내린 건 한국만이 아니다. 중국·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는 다음달부터 일제히 가격을 인하할 계획이다. 반면 유럽 지역에서는 가격을 올린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샤넬은 다음달 8일부터 유럽 지역에서 판매되는 핸드백의 가격을 20% 정도 올리고, 아시아 지역에서의 가격은 대략 21% 내린다. 대표적인 가격 인하 제품은 클래식과 보이샤넬 등 핸드백이다. 경제전문지 ‘쿼츠’는 “샤넬이 올해 말까지 의류·보석·구두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조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콧대 높던 샤넬이 이렇게 가격을 조정한 배경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유로화 약세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9일부터 국채 매입을 통해 월 600억 유로씩 시장에 푸는 양적완화(QE)를 단행하면서 유로화는 달러·엔·원화 등에 비해 약세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샤넬은 이런 국제 통화의 흐름을 이용해 전 세계적인 가격 조정에 돌입한 것이다. 샤넬 코리아 관계자는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올 한 해 단계적으로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샤넬 등 명품 브랜드는 그동안 지역별 가격차를 어느 정도 용인했다. 루카 솔카 BNP파리바 애널리스트는 “같은 핸드백이라도 지역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뉴욕이 파리보다 10% 정도 비쌌고, 중국은 수입관세 등으로 인해 파리에 비해 30~40% 비쌌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로화 가치가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지역별 가격차가 지나치게 커졌다. 샤넬의 11.12백(미디엄)은 중국에서 3만8200위안(약 6095달러)에 팔린다. 파리에서 이 핸드백의 가격은 3550유로(약 3750달러)에 불과하다. 중국 가격이 프랑스보다 63%나 비싼 것이다. 애런 피셔 CLSA 애널리스트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샤넬 제품의 지역별 가격차가 최근처럼 벌어진 적은 없다”고 말했다.

 가격차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 ‘명품 원정 쇼핑’이다. 중국·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는 ‘유럽 여행을 하고 샤넬 백 하나 건져오면 비행기 값은 떨어진다’고 할 정도였다. 유럽행 비행기를 탈 이유가 충분했다. 유럽 등지로 여행을 간 아시아 관광객 중 상당수는 현지에서 산 샤넬백을 자국의 ‘암시장’에 내다 팔았다. 실제 중국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는 샤넬 11.12백이 3만1000위안(약 4946달러)에도 거래됐다. 이렇게 싸게 팔리는 암시장은 명품업계의 골칫거리가 됐다. 중국·한국 등 공식 매장의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샤넬은 유로화 약세를 활용해 결단을 내렸다. 가격을 내려 암시장에 뺏긴 고객을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가격을 내려도 유로화 약세 덕에 유로화로 환산한 매출과 이익은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가격을 내리면 더 팔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국에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유럽 에서는 유로화 약세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유럽에서 가격을 올려 매출이 줄더라도 아시아 지역의 매출 증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샤넬의 전 세계 가격 평준화 전략은 다른 명품 업체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주요 명품 업체들은 최근 10년간 가격을 많이 올려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이었다. 애버리 부커 차이나 럭셔리 파트너 컨설턴트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명품 브랜드도 샤넬의 움직임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샤넬코리아는 이번에 값을 내린 제품을 최근 구매한 고객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샤넬 관계자는 “가격 인하 보름 전인 2일 이후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환불 또는 크레디트(상품 교환 포인트)를 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18일부터 각 매장에서 환불이 진행 중이다. 면세점도 해당된다. 다만 이미 출국한 고객의 경우는 고가 면세품 반입 절차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아직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하현옥·구희령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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