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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듯한 색채의 울림 인간 감정·경험 오롯이 담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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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11면

마크 로스코의 ‘무제’(1953), 캔버스에 오일, 195 x 172.1cm,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몇년 전 영국 출장길,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를 제대로 만났다. 특유의 묵직한 색채가 주는 중량감도 대단했거니와 더욱 놀라운 것은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자세였다. 앉거나 서서 하염없이 수십 점의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 덕분에 전시장 분위기는 교회나 성당의 기도실을 방불케했다.

추상표현주의 거장 마크 로스코와의 만남

알고보니 그것은 마크 로스코가 그림을 그린 진정한 의도이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사이먼 샤마는 “회화사 전체를 통틀어 로스코만큼 관람자와의 관계에 천착한 화가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로스코는 자신이 그림에 담은 감정을 관람자와 온전히 교류하길 원했다. 작품을 액자에 끼우지 않은채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낮게 걸도록 했던 것도 관람자에게 작업실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관람자를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전시를 앞두고 지난해부터 마크 로스코를 연구한 대중철학자 강신주씨는 “인간이 가진 숙명, 어떤 비극성”이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지요. 그는 1차 대전, 대공황, 2차 대전이라는 힘든 상황을 겪었습니다. 주변에서 이렇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도덕적으로 위기 상황이 발생했는데, 그것에 대해 모른척한다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 감정이 보는 이에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테고요.”

전쟁이 끝나고 그가 추구한 것은 ‘미국다우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시간을 초월해 기억되는 이미지’였다.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비극,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탐독하던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본 마티스의 ‘붉은 작업실’에서 실마리를 얻는다. 그것은 형태가 아닌, 색채가 주인공인 화면이었다. 그의 색채는 어떤 형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명력을 가졌다. 작가는 자신이 사용하는 색채를 ‘배우’라고 불렀다.

그의 그림속 색채는 마치 숨을 쉬는 듯한 울림이 있다. 그는 물감에 테레빈유를 섞고 캔버스에 펴 발랐다. 물감의 색소를 하나하나 확인하듯 칠하고 또 칠했다. 샤마는 “진한 색의 밀도 높은 면들이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흩날리는 투명하고 엷은 안개”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로스코에게 자신의 그림은 추상화가 아니었다. 인간의 경험과 기본적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로스코는 말한다. “만일 내 그림 앞에서 감정을 터트리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그림을 매개로 그들과 소통한 순간입니다.” 이를 두고 강 박사는 “그의 작품을 추상표현주의가 아니라 소통표현주의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그림이 신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경계다. 한 색과 다른 색의 경계는 부드러우면서 모호하다. 이것과 저것을 분명하게 가르는 것이 아니라 ‘저 밑바닥 어딘가에 있는 빛 위로 모든 것이 불안하게 얹혀져 있는 가운데 그 틈으로 슬쩍 비치는 빛’이다. 샤마는 “경계가 부드럽고 모호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신비로운 운동감도 생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스코의 색면은 그런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싸우고 화해하면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을 찾는 작품은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로스코의 대형 유화작품 50점이다. 초기·중기·말기의 작품을 망라했다. 미술관이 수리보수에 들어간 덕분에 네덜란드·한국·미국 투어가 성사됐다, “작품 평가액만 2조5000억원으로 국내 전시사상 최고가”라는 것이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설명이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
러시아 드빈스크 출생. 본명은 마르쿠스 로트코비치. 열 살 때 가족이 미국 오리건주로 이주했다. 예일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미술은 배우지 않았다. 대학 중퇴 후 스물 두 살 때 뉴욕 아트스튜던츠리그에서 회화 수업을 들었다. 그로부터 20년 만에 페기 구겐하임의 후원을 받으면서 화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1940년대 후반 자신만의 사각형 색면회화를 선보이기 시작, 5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 대표 중 하나로 참가했다. 스튜디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크 로스코전:
3월 23일~6월 2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 휴관, 성인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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