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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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월3일.
상오 10시에 장면박사는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임명장을 받았다.
우리는 낮12시에 「스트러블」해군소장의 점심초대를 받아 부산에서 6마일 밖 해상에 정박하고있는 미국의·항공모함 미주리호로 떠났다. 어찌나 풍랑이 일고 파도가 높았던지 미주리호의 상륙발판까지 우리를 태우고간 모터보트가 앞으로 밀리고 뒤로 밀렸기 때문에 나는 뾰족구두를 신고 뛰어넘다가 넘어지거나 신발을 빠뜨릴까봐 구두를 벗어들고 맨발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승무원 2천3백명「스트러블」 제독은 우리에게 배를 구경시켜 주었는데 특히 우리를 일본인들이 항복문서에 서명했던 장소로 안내했을 때는 감회가 깊었다.
항일독립투쟁에 평생을 바쳐온 대통령을 남달리 존경하고있는 「스트러블」 제독은 정성을 다해 우리를 영접해 주었다.
이 항공모함은 승무원이 2천3백명이나 되는 참으로 커다란 배였는데 승무원들은 예장을 갖추고 일렬로 서 있었다.
대통령은 의장대를 사열했다. 사열식이 끝난 다음 「스트러블」 제독은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식당은 칸막이는 없었는데도 군데로 나누어져 있었다. 식탁은 2개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식탁은 「스트러블」 제독·대통령· 「무초」 대사· 신성모 국방장관·부산통제 부사령관 「가빈」장군과 이배의 고급장교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정말로 극동의 방패역할을 하고있는 지휘관인 「스미드」 제독이 가운데 앉고 그의 왼편이 장면국무총리 자리였으며 제독의 오른편에 내가 앉았다.
신현희 의장을 위시하여 손원일 제독· 「루시」 사령관과 다른 해군고급장교들이 멋있는 제복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그 장교들 가운데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감독 한사람이 끼여있었다.
나는 이사람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없지만 그 감독이 만든 작품 이름은 기억이 났다. 『나의 계곡은 얼마나 푸른가』 (How green was my valley) 『하나의 나무가 「블루클린· 존」 에서 자라고 있다』 (A tree grows in Blooklyn John)라는 감명 깊은 영화였다 (편집자주=How green was my valley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존·포드」 감독의 작품). 그사람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포항으로 비행해갔다. 내 생각에 그 사람들은 영화를 촬영하려고 여기에 온것 같았다.
나는 일전에 어느 잡지에서 그감독에 대해서 쓴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그 사람들은 여기서 밀림의 장면과 몇가지 다른 장면을 찍으려했는데 한국의 풍경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감독에게 어떤 영화를 만들며 왜 여기서 촬영하는가를 물어보지 못했다. 그 감독은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었으며 퍽 말이 적은 사람 같았다. 점심식사가 끝난후 우리는 한층 아래에 있는 넓은 휴게실로 내려갔다.

<연설문 초안 선물로>
「스트러블」 제독은 자기 배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몇마디 연설을 해달라고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대통령은 연설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경우를 생각해서 부산부두를 출발하기 전에 미리 몇마디를 간략하게 타이프한 메모를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연설의 사본도 없고 원본도 없다.
왜냐하면 「스트러블」 제독이 그연설문 초안을 메모한 조그마한 종이쪽지를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요청해 대통령이 그것을「스트러블」 제독에게 주고 왔기 때문이다. 평소 종이를 절약하는 대통령의 습관으로 그 쪽지가 워낙 보잘것없고 또한 연설사본도 못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주는 것을 꺼렸는데 그 불완전하고 볼품없는 헌 종이 조각을 「스트러블」 제독은 가장 위대한 애국자의 참모습이 그대로 담긴 값진 기념물이라고 하면서 갖고싶어했다.
그것은 우리주소가 적힌 편지겉봉 뒤집은 것을 반으로 잘라 대통령이 직접 타이프하고 메모한 반쪽짜리 우그러진 종이쪽지였는데 「스트러블」 제독은 무슨 보물처럼 여기며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대통령은 「스트러블」 제독에게 훈장을 수여하였다.
우리가 제독에게 훈장을 수여하려고 준비해왔다는 것을 손원일 제독이 그의 부관에게 알렸을 때 그들은 무척 놀라며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냥 기뻐했다.
훈장수여식을 마치고 많은 사진을 찍은 다음 우리 일행은 모터보트로 돌아왔다 벌써 하오 3시반이었다.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4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조금후에 「무초」 대사와 「콜터」 장군이 왔다.
대통령은 국방장관에게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남아있도록 했었다.

<적은 어디에 있는가>
「콜터」 장군이 대통령을 찾아온 이유중의 하나는 적의 후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공군과 북괴군들의 동태에 대한 정보를 시급히 얻고자하는 것이었다.
지금 미군들은 적에 대한 정보를 한국군측이 제공해 주기만을 기대하고 있다고 「콜터」장군은 강조했다.
미군들은 적이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콜터」 장군은 적의 위치와 동태를 알아내는데 한국측이 적극 협조해주기를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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