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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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숨을 죽이고 있던 장내가 갑자기 환호의 물결을 이룬다. 전광판엔 9명의 심판들이 모두 6점 만점을 준것을 표시하고 있었다.
「금세기 최고의 아이스 댄서」, 영국출신 「제인·토빌」과 「크리스터퍼·딘」조는 서로 얼싸안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은 마치 이들 두사람을 위해 마련된 행사 같았다.
「토빌」 「딘」페어조는 지난 14일밤 예술적 심사에서 심판 9명 전원으로부터, 기술적 심사에선 3명의 심판으로부터 만점을 받고 자유형 부문의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들이 이번 대회에서 받은 45회의 판정중 만점을 받은 것은 모두 l8회. 그것 자체가 올림픽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인간이 표현해낼 수 있는 최고의 미를 연출했다』고 심판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라벨」의 무곡『볼레로』가 끝나고 「딘」의 품에서 떠나 빙판 위에 엎드린채 호흡을 가다듬는「토빌」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 우승으로 그들은 세계 선수권대회 3회, 유럽 선수권대회 3회 우승에다 올림픽까지 제패해「로드리나」「자이체프」조의 신화적 업적에 비견되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이들의 영광이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딘」은 스케이트장의 잼보니(눈 치우는 차)를 모는 가난한 청년이었고, 「토빌」은 보험회사의 평범한 여사원이기 때문.
새벽 4시. 아무도 없는 어두운 링크 위에서 그들은 코치도 없이 나름대로 작품을 구상하고 끊임없이 반복된 연습을 했다.
2시간 남짓 연습을 마치고「토빌」은 출근길에 올랐고, 「딘」은 잼보니를 몰며 스케이트장을 정비했다.
83년의 헬싱키 세계 아이스댄싱 선수권대회 때는 피겨사상 최초의 예술점수 퍼픽트를 기록했다. 심판 전원이 6점 만점을 준 기록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광은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하나 갖게된 영국인의 것이요, 더우기 고향 노팅검 사람들의 것이다.
이들이 빙상에 전념하기 위해 직업을 버리고 생계가 막연했을 때 노팅검 시의회는 이들에게 2만달러(1천 6백만원)를 보조하기로 결의했었다.
75년부터 9년 동안 눈을 비비며 일어나 새벽부터 연습해 온 이들의 노고보다 이들의 대성을 위해 투자할 줄 안 노팅검 시민의 의지가 더 값져 보인다. 「노 메달」의 참패를 안고 돌아오는 우리 선수단과 국민이 함께 새겨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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