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재계 새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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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재준 대림그룹회장은 비록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매일 상오7시10분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한다.
아들인 이준용 대림산업사장을 비롯, 임원들은 아직 출근도 하기전이다.
이회장은 남달리 부지런하기로 이름이 나있다. 일일이 결재는 않지만 그룹전반의 중요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고 결정권을 행사하는 이회장은 회사사무실에서 상오9시까지 1시간반 동안에 자신이 맡고있는 대한건설협회일을 본다.
또 이시간에 해외출장을 떠나는 사람과 갔다온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그리고 부지런히 현장을 돌아보기도 한다. 근검·절약정신이 몸에 벤 이회장은 아직도 시간을 아끼고 쪼개 쓰고 있다.
자수성가한 사람에게서 흔히 보는 이같은 부지런함에다 절약과 안전제일주의적인 보수경영체제가 바로 오늘의 대림을 만든 뿌리다.
39년10윌10일 경기도 금천에서 원목생산과 건축자재판매업으로 출발, 45년만에 기업에 연간 매출액 1조4천억원의 건설그룹이 되기까지 이회장은 보수·근검의 경영철학을 지켜왔다.
대림의 경영대권을 물려받은 이준용사장에게도 아버지의 이같은 경영철학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
이회장은 『풍년양식은 모자라고 흉년양식은 남는 법이다』라는 말을 자주 중역들에게 들려주며 절약을 강조한다.
모든 것이 넉넉할때 절약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이회장은 손님을 만날때 외에는 항상 회사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중역식당의 식단은 밥과 국한그룻·김치 ·굴·고추장·김등이 전부다. 토요일에는 국수한그릇과 김치뿐이다. 중역들이 식사를 하다가 밥이나 국수국물을 남기면 야단을 맞는다. 음식 귀한줄 모른다는것이다.
일상생활의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절약이 몸에 배야 현장에서 자재를 아껴쓰게되고 이것이곧바로 회사의 이익과 연결된다는 논리다. 이회장은 양복도 10년에 한번꼴로 해 입는다고한다.
돈이 아깝다기보다 쓸데없는 돈은 안쓴다는 주의다.
녹슨 못이 현장에서 버려진채로 있는것이 눈에 띄면『다시 쓸수도 있는데 왜버리느냐』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대림의 이같은 구두쇠경영에는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건설업계에서는 대림을 보고 쇠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회라고 한다.
대림이 얼마나 안전제일주의를 지향하는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첫 진출때를 보면 그대로나타난다. 대림은 74년 일본일립사가 하청을 준 27만달러짜리 공사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첫 진출했다.
당시 건설부에서는 『건설업계 랭킹2위인 대림이 겨우 27만달러짜리 공사도급허가나 받으러 오느냐』 며 도급허가 받으러온 과장을 호통을 쳐서 돌려보냈다 한다. 그러자 중역이 달려와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 우리는 시장조사를 하러가는 것이지 공사를 하러가는 것이 아니다』라며 도급허가를 해주도록 간청했다 한다. 27만달러 모두손해를 본다하더라도 시장조사비로 치면 엄청나게 싸다는 계산이였다.
대림은 이같은 치밀한 사전조사를 토대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 알코바지역에서 주로 발전소·액화가스공장등 기술집약형 플랜트공사를 맡아 큰돈을 벌었다. 이때 번돈으로 79년호남에틸렌도 인수했다.
이회장은 아들 이준용 사장에게 79년 대림산업의 경영권을 물려줄때까지 이같은 경영철학으로 기업을 이끌어왔다.
안전제일주의 경영으로 재무구조가 남달리 튼튼하다는 소문을 듣던 대림이지만 지난해에는 상당히 고전을 했다는 소문이다.
쿠웨이트에서 따낸 발전소건설공사에서 많은 손해를 본데다 수주실적이 신통치 않았기때문. 또 당초 적자를 보리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새로 인수한 호남에틸렌· 대림자동차의 적자폭이 너무 큰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호남에틸렌도 흑자가 예상되는데다해외건설 수주전망도 밝아 재무구조가 좋아질것으로 보고 있다.
남들은 70년대에 수십개씩 방계회사를 늘려왔지만 이회장은 외길로 건설 및 건설과 관련된 회사외에는 새로 회사를 만들지 않았다.
그때문에 대림의 경영이 단단하다는 말을 듣지만 새까만 후진에 추월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준용사장은 이에대해 『성장이 욕망이요, 목표일수도 있지만 사람은 능력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며 본업인 대림산업을 착실히 키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의 경영능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룹규모만 키워본들 무슨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자기실력대로 착실히 다져가며 기업을 확장하는것이 아니라 어쩌다 시기를 잘 만나 빚만 잔득 늘려서 기업을 확장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림은 최근 대림엔지니어링 호남에틸렌·대림자동차외에 종합레저업인 서울랜드등 건설에 뛰어드는등 건설이외의 분야에도 차츰 진출하고 있으나 뿌리깊은 보수적 기질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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