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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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위로 형님과 손아랫 동서와 가운데의 나는 각각 나이의 차이가 일곱 살씩이다.
나이 차가 그쯤 되고 보니 서로가 아주 어렵지도 않고 막역하게 지낼 터 수도 아니니 내가 생각하기엔 꼭 알맞다. 주위에서 보자면 손아래면서 아이가 위면 서로 공대하기도 어색하고 여간 서먹서먹한게 아니라고들 한다.
지난 어머님 제사때는 형님이 연수원에 가시게 되어 둘째인 내가 제수준비를 서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마엔 진땀이 배었다. 그렇다고 아랫동서인들 일을 썩 잘해내는 솜씨도 아니니.
큰일, 작은 일들을 거뜬거뜬 해내시는 형님 얼굴이 자꾸 스쳤다.
"어머님이 웃으시겠네. 일도 못하는 두 며느리가 꼬물꼬물 앉아서 쩔쩔매는 걸 보시면… "
동서는 잠자코 따라서 웃었다. 겨우 제사음식을 장만해놓고 이번에는 아버님이랑 잡수실 갈비찜과 녹두전 따위를 마련하느라 도통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우리는 그저 설거지나 맡는게 제일 편한데 "
경황이 없는 중에도 나는 가끔 입을 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섯시가 조금 못되어 형님이 돌아오셨다. 둥근얼굴에 둥근 웃음을 띠고 현관을 들어서 시면서부터 서두르셨다.
"어떻게 다됐어? 자네들 애쓰네. 제기는 마른행주로 다 훔쳐냈나?"
형님은 한꺼번에 몇 가지를 물으셨다. 아마 퍽 걱정을 하셨던 듯 싶었다.
그날 제사는 작은 댁 어른들을 모시고 빠진 것이나 준비가 안된 것 없이 정성껏 모시게 되었다.
"제가 혼자 다 했지요. 뭐 동서는 옆에서 쩔쩔매기나 한걸요. "
악의없는 내 우스갯소리에 형님과 동서는 따라서 웃었다.
나 혼자 잘 떠들고, 수다장이이고, 변덕스럽고, 형님과 아랫동서는 둘다 말수가 적은 우리 삼동서.
함께 동서로 맺어진 인연 또한 결코 우연의 소치는 아니리라.
이은숙<서울성동구 송정동73의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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