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넨코 서기장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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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콘스탄틴·체르넨코」가 「안드로포프」후임으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기까지 크렘린은 상당한 진통을 겪은 듯 하다.
서기장 선임을 둘러싼 정치국의 조정작업이 지연되어 이를 공식 확인하는 중앙위원회 소집이나 진행이 예정보다 늦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 때문에 이번 회의는 『정중히 경청하고 열렬히 지지한다』는 과거의 공산당식의 형식적인 회의와는 달랐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변화와 발전을 지향하는 소장층과 현상유지를 고수하면서 「브레즈네프」체제를 지속해 나가려는 노장층 사이의 견해차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체르넨코」의 집권이 전혀 의외이거나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는 「브레즈네프」의 심복으로서 82년「안드로포프」와의 권력경쟁에서 비록 패배하긴 했었지만 계속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안드로포프」사망 후 그가 장례위원장으로 추대 됐다는 사실은 그의 서기장 선임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해 주었다.
그러나 「체르넨코」가 「스탈린」이나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등 그의 선임자들처럼 강력한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없지 않다.
72세라는 그 연령과 강력하고 도전적인 소장그룹의 건재, 그리고 점점 세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는 군부 KGB 중심의 산군연합세력, 중간 엘리트층을 착실히 구축하고 있는 체크노크 라트 등장 등 소련의 현실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특히 장기집권에 성공한 그의 선임자들이 1인지배 체제를 구축하는데는 집단지도라는 과도체제를 거쳐서 가능했다는 사실도 간과할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체르넨코」체제의 내외정책, 특히 대외 정책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한나라의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흘러도 외교정책에는 변화보다는 지속성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국제정치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러시아의 10월 혁명 같은 철저한 체제변화·지배자교체를 겪은 후의 소련 외교정책이 제정러시아의 외교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논리로 볼 때「체르넨코」의 세계정책구조는 종래의 소련정책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고 하겠다.
특히 「체르넨코」자신이 「안드로포프」보다는 강경하지만 소련내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데다가 신「브레즈네프」파였고「브레즈네프」의 정책구조 형성에도 많이 관여해 왔다는 점에서도 정책의 변화를 크게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소련의 권력행사의 중심부이고 정책결정의 최고기관인 정치국의 구성만 보아도 70대가 6명, 60대가 4명이고 50대는 2명뿐이다. 그 평균연령은 68세로 나타났다. 「체르넨코」는 정치국 평균연령보다 5세가 더 높다.
이것은 소련정치의 노인지배(gerontocracy)화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가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지향하는 보수성향을 의미한다.
소련 외교정책의 특징은 혁명외교와 공존외교의 양면성에 있다. 상호 모순되고 이질적인 두개의 측면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순서와 강도를 바꿔가면서 표면화 돼왔다.
「스탈린」이 혁명외교의 대표자라면,「흐루시초프」는 공존외교의 챔피언이었다.
그후의 「브레즈네프」는 그 중도적 노선을 걸어 강대한 서방과는 데탕트를 유지하면서 허약한 제3세계에 대해서는 팽창주의 정책을 취해왔다. 변형된「스탈린」체제라 하여 그를 네오스탈린니스트라 한다.
「체르넨코」체제의 대외정책은 스타일의 변화는 있겠지만 이 기본구조를 벗어나지 못할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소련의 한반도 정책도 환경변화에 따른 점진적 변화이상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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