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돼지들에게' 낸 최영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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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영미(44)씨의 신작 시집 '돼지들에게'(실천문학)는 솔직히 당혹스럽다. 가위 '문제작' 수준이다. 이미 문단에선 이번 시집을 놓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시인은 "문학 외적으로 읽지 말아달라"고 수차례 당부했다. 그러나 문단은 벌써 시끄럽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나왔던 십여 년 전에도 시인은 논쟁적이었다. 시집은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시인은 그 뒤로 논란의 복판에 있었다. 첫 소설 '흉터와 무늬'의 '자전 소설'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던 올 봄에도 시인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느냐"고 반박했다. 여하튼 세상 혹은 누군가를 향한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그만의 화법은 숱한 소문을 낳고 또 낳았다.

이번 시집은 아마도 두 가지 독법이 있을 듯하다. 하나는 시인의 말처럼 한국 사회의 위선과 탐욕, 일부 진보세력의 횡포와 탐욕을 겨냥한 비판으로 읽는 것이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성경 구절에서 비롯했다는 '돼지 연작' 여섯 수를 비롯한 여러 시편은 시인의 말마따나 지식인의 이중성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을 담고 있다. 충분히 이렇게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독법은 문단이 술렁이는 까닭과 관계 있다. 시집을 읽은 문단의 일부는 문단 안팎의 인물 몇몇을 떠올린다.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시를 썼다는 해석이다. 일테면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돼지들에게' 부분)에서나, "그는 원래 돼지였다/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그는 여우가 되었다//그는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돼지의 변신' 부분) 등의 시편에서 시인의 체험적 육성은 또렷하다. 하여 시대적 감수성에서 비롯된 야유와 풍자로 여기기에는 과도하게 사적(私的)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했다. "특정인이 연상된다"는 질문에 그는 "돼지 중에는 암퇘지도 있고 진주가 최영미라는 증거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처음엔 아무개라는 대상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시상을 정리하면서 아무개는 보편적으로 변했다. 내 문장의 정확함만이 문학 외적인 풍문을 잠재울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시인은 "시로만 읽어 달라"고 반복해 말했다. 그러나 시인의 의지와 독자의 판단은 다를 수도 있는 거다. 신경림 시인이 추천사에 쓴 것처럼 "최영미 시가 가진 큰 미덕인 남의 눈치 안 보고 할 말을 다하는 용기"만이 읽히길 바란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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